저서 교수신간-시대묵상(박영돈 교수)
페이지 정보
본문
시대묵상
지은이 박영돈
출판사 IVP
삶의 무게만큼 깊은 신학, 일상의 신비만큼 소중한 통찰
정치, 사회, 문화, 교회 그리고 일상
격동의 시대 한가운데서 탄식하는 자들과 함께 호흡해 온 일상에 깃댄 신학자의 묵상과 고백
한국 교회가 직면한 위기에 대해 예언자적 성찰의 목소리를 내 온 신학자 박영돈 교수가, 불온하고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신음하는 가운데 써 낸 글들이다. 세월호 참사부터 국정 농단 사태까지, 굵직하고 무거운 시대의 아픔을 신학적으로 성찰했고,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진 교회 문제의 본질을 꿰뚫었으며, 엄혹한 시기에도 일상의 소중함을 놓치지 않는 전인적인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 주는 책이다.
본문중에서
의무감을 훌훌 벗어 버리고 자유롭게 글을 쓸 때가 있다.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내가 쓰고 싶을 때 내가 쓰고 싶은 내용을 쓴다.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내적 부담을 느끼거나 기발한 착상, 영감이 떠오르는 때가 그때다. 이 책은 바로 그렇게 해서 나온 글을 모은 것이다.…이 책은 특별히 아픈 시대를 함께 지나면서 동시대인들과 나눠 온 시대의 묵상이자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글을 쓴 시기가 묘하게도 세월호 참사부터 국정 농단 사태까지 우리 사회가 거쳐 온 격동의 시기와 맞물리기 때문이다.…나는 많은 사람 안에서 솟구쳐 오르는 절규에 가까운 외침을 조금이나마 대변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고, 그래서 이 글에 공명한 이들이 많았다.
_들어가는 글(9-10쪽)
…겉으로는 환영하는 척했지만, 솔직히 어떤 동기로든 교회를 찾아온 사람인데 나는 그분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예배 시간에 그분은 진지하게 설교를 경청했고 말씀에 감동을 받았다는 말도 남겼다고 한다. 비록 약간의 재정적 도움을 바라고 왔겠지만 그것이 예배를 드리러 온 이유의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아마 주님이 그분의 발걸음을 인도하셨을 것이다. 내가 새로운 교인을 보내 달라고 기도했고 기도의 응답으로 그를 보내 주셨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나는 기쁘지가 않은가? 작은 교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것이 있는 사람들, 돈도 있고 유력한 사람들이 오기를 내심 바랐는데 오히려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이 왔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던 것 같다. (2012.07.26.)
_천사를 냉대하다(14-17쪽)
전에 부교역자로 봉사하던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담임목사가 부목사들에게 교인들을 성화시키려 하지 말라고 한 적이 있다. 그분은 신학 박사였고 후에 유명 신학교 총장까지 지내셨다. 당시 그 말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교회 사역을 30년 하고 난 지금에 와서야 그분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 목사님은 오랜 목회 경험을 통해 교인들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절히 체험한 후, 후배들에게 괜히 마음고생하며 헛수고하지 말라는 실질적 조언을 한 것이다. 차라리 그 목사님의 말대로 성화에 대한 기대를 접고 목회를 하면 교인들이 변하지 않는다고 실망하거나 애태울 일이 없으니 목회가 좀더 편해질지 모르겠다.…우리가 마주한 현실이 난공불락처럼 보일지라도,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경험상 영원불변의 법칙으로 보일지라도 성경 진리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하지만 충실한 복음 사역을 통해 성화의 열매는 반드시 나타난다. 복음의 능력은 사람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킨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복음은 모두 거짓말이 된다. 나는 요즘 작은 교회를 섬기면서 성화는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2013.09.25.)
_성화는 가능한가?(43-46쪽)
…세월호 참사는 우리 민족사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뼈아픈 사건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사에 분수령을 이루는 사건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패와 부실함이 여지없이 드러난 마당에 이 나라가 더 이상 전과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이 나라는 대변혁과 몰락의 기로에 섰다. 이번 참사는 이전의 다른 사건들처럼 시간이 좀 지나면 잊히고 별일 아닌 것처럼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는 온 국민이 받은 충격과 상처와 고통이 가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이 땅과 하늘과 그 안에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이 결코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사건이다. 침몰한 세월호와 함께 부패하고 무능한 이 나라 정부와 기성세대는 침몰하고 온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것이 아이들을 지켜 주지 못한 우리의 무능과 죄책을 조금이라도 더는 길이며 우리 후손들에게 이 같은 불행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하는 길이다. (2014.04.25.)
_저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73-78쪽)
인생은 아프다. 평생 가시지 않는 아픔을 절절히 끌어안고 사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미국 칼빈 신학교 교장이었던 존 크로밍가(John H. Kromminga) 교수는 평생 정신분열증에 걸린 아들을 곁에 두고 살며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정신 질환을 앓는 환자의 가족이 겪는 고충은 이루 형용할 수 없다. 크로밍가 교수는 하나님께 화가 나곤 했다고 한다. 기독교 윤리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아내를 돌보며 미칠 듯이 괴롭고 고독한 삶을 근근이 버텨 냈다고 고백했다. 우리 주위에도 평생 하나님께 간구하며 매달려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와 고통, 장애로 신음하며 사는 이들이 많다. 하우어워스가 말했듯이, 이런 이들에게 신앙은 해답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생의 고뇌와 실존적 아픔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모든 문제에 대한 정답을 가진 듯이 기독교 신앙을 만병통치약으로 소개하는 천박하고 상업적인 메시지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느끼게 한다. (2015.04.19.)
_아픔과 더불어 사는 인생(136-137쪽)
미국 이민 교회에서 청년부 담당 전도사로 봉사할 때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한 청년이 했던 말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교회에서만 신자가 아니라 세상에서도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느냐고 정면으로 내 말을 반박했다. 교회와 세상에서의 삶은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그 청년이 신앙의 기본도 모르는 한심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비위에 거슬렸던 말이 세상 풍파를 조금 더 거치고 난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살벌한 경쟁 체제 속에서 모든 기업은 이윤 극대화와 사업 확장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직원들을 혹사한다. 살인적 경쟁률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해도 언제 퇴근할지도 모른 채 밤늦도록 회사에 충성해야 한다. 구조 악과 모순으로 뒤엉켜 있는 이 사회 속에서 악바리 같지 못한 신자들은 밥 벌어먹기조차 버거운 삶을 산다. 매일 이런 냉혹한 현실을 직면하는 교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소명이라는 대의명분은 실현 가능성 없이 무거운 짐으로만 느껴질 수 있다. 교인들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 살기 위해 교회는 어떻게 가르치고 훈련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숙성된 가이드가 절실하다. 교인들의 실존적 고뇌와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한 분석을 다각도로 깊이 있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2016.05.20.)
_직업 소명?(219-220쪽)
국가적 혼란을 겪으며 나는 그동안 사회정의와 정치에 무책임했던 점, 나라와 위정자들을 위해 진정으로 기도하지 못한 점을 깊이 반성하였다. 그러나 또 다른 극단, 곧 기독교가 정치와 결탁하고 정치가 신앙보다 절대화되는 정치 우상화는 여전히 경계한다. 앞으로 시민의 한 사람이자 교회의 선생으로서 대사회적 책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 정치에 큰 기대는 걸지 않는다. 전에는 동료 교수에게 투표도 안 한다고 핀잔을 듣곤 했는데 이번에는 앞장서서 투표할 예정이다. 아무래도 이번 대선 투표율은 높아질 모양이다. (2016.04.28.)
_20년 만의 대선 투표(287-288쪽)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