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 교수신간-바른예배를 위한 찬송 해설(이성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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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예배를 위한 찬송 해설
지은이 이성호
출판사 SFC출판부
도서소개
하나님께서는 어떤 찬송을 좋아하실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찬송하는 것을 좋아하실까?
성경과 교회사에서 배우는 바른 찬송!
그야말로 찬송이 넘쳐나는 시대다. 해마다 수많은 찬양 앨범이 쏟아져 나오고, 기독교와 상관이 없는 주요 음원 사이트들에서도 CCM차트는 빠짐없이 소개되고 있다. 찬송이 하나의 큰 시장을 이룰 정도로 기독교인들에게서 많이 불리면서, 예배의 핵심이 설교가 아니라 찬송으로 옮겨간 듯한 인상을 받는다는 지적들도 많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찬송으로 불리는 노래들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찬송의 본질에 대한 고민 없이 예배 중에 부르는 여러 노래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보다는 부르는 이의 감정을 고양시키고 위안을 얻게 하는 데 초점을 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그 노래가 불릴 때 회중들 가운데서는 뜨거운 감정이 일어나지만, 정작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삶에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는 이어지지는 않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찬양이 이렇게 넘치는데 교회들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그러므로 지금은 우리의 찬송을 반드시 면밀하게 점검해야만 할 때다. 그리고 우리가 찬송을 점검하는 방법은 우선은 모든 신앙의 기초인 성경에 비추어 보는 것이어야 하며, 둘째로는 신앙의 전통을 살피는 것이어야 옳다. 이 책은 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는 교수가 이러한 절박한 필요에 따라 쓴 책이다.
(13쪽)
이런 상황에서 노래가 힘을 발휘한다. 노래는 산문과 달리 짧고 함축적이다. 모세는 출애굽기 14장까지 홍해 이야기를 상세하게 기술한다. 그리고 노래로 그 사건을 마무리한다. 출애굽기에서 가장 처음 등장하는 이러한 양식은 하나의 문학 장르로서, 이로써 출애굽기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만약 출애굽기가 역사적 사실만 나열하는 책이었다면 모세의 긴 시를 그대로 싣지는 않았을 것이다. 똑같은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노래는 산문에 비해 부르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암기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사건을 노래로 부르면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대대로 자녀들에게 전달하였을 것이다.
(28~29쪽)
동일한 찬송이라 하더라도 누가 부르는가에 따라서 내용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환란과 핍박 중에도>라는 찬송을 한번 살펴보자.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노래를 지은 사람이 신앙 때문에 불신자들에게 핍박을 받았다고 추측할 것이다. 하지만 이 노래를 지은 사람은 가톨릭 신부인 프레데릭 페이버Frederick William Faber, 1824~1863년로서 영국 종교개혁 당시에 가톨릭 순교자를 추모하기 위해서 이 찬송을 지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안다면, <환란과 핍박 중에도>라는 노래를 개신교인들이 아무런 부담 없이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61쪽)
라오디게아 공의회는 찬송에 대해서 세 가지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첫째, 예배 시간에 회중들이 찬송을 부르지 못하게 하였다. 둘째, 예배에서 악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다. 셋째, 성경구절만 찬송할 수 있도록 하였다. 라오디게아 공의회는 이런 식의 단호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이단들의 교리가 찬송 안에 들어오는 것을 근본적으로 저지하였다. 예배 시간에 찬송을 부르는 사람은 목사에 버금가는 직분자로 간주되었고, 시편이 찬송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게 되었다. 악기 금지는 그 당시의 세속적인 음악이 교회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70쪽)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찬송은 신학과 분리될 수 없다. 교리의 변화는 단지 교리의 변화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모든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다. 종교개혁이라는 엄청난 교회의 변화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종교개혁은 찬송의 내용뿐만 아니라 찬송의 형식에도 큰 변화를 초래하였다. 로마교회와 차별화된 바른 교리는 공적인 찬송을 결정하는 일에서 최고의 기준이 되었다. 당연히 로마교회의 교리나 관습을 반영하는 찬송은 예배 찬송 목록에서 삭제되었다. 만인제사장 교리는 예배 시간에 회중들이 찬송을 부를 수 있게 된 신학적인 근거가 되었다. 종교개혁가들은 이것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대중들이 보다 쉽게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성도들이 예배 시간에 모국어로 찬송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찬송에서 생긴 가장 큰 변화다.
(78쪽)
시편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자 이전보다 훨씬 더 대중적인 찬송을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왓츠가 사용한 거의 대부분의 운율들은 간단한 운율 몇 개에 한정되어 있었는데, 이 때문에 대중들은 이미 알고 있는 곡조를 통해 찬송을 쉽게 배울 수 있었다. 만약 어떤 곡의 운율만 알고 있으면 그 운율과 같은 찬송은 모두 다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의 가사는 철저하게 성경에 근거했기 때문에, 로마교회를 비롯해 교파를 초월하여 사랑을 받았다. 그의 찬송가는 대서양을 넘어서 미국에서 애창되었고, 18세기 중반의 부흥운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94쪽)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한다면, 왜 예배 시간에 송영이 빠지는 것일까? 그렇게 긴 곡도 아니고, 곡이 어렵지도 않다. 어떤 사람은 이 노래가 소위 ‘은혜’가 별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박해를 받아 죽어 가면서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 “환란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와 같이 찬송을 불렀을까? 그렇지 않다. 적어도 그런 노래는 그 당시에 없었다. 그들은 바로 <성부 성자와 성령>과 같은 단순한 찬송을 부르면서 거룩하신 삼위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쁨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112쪽)
<참 목자 우리 주>의 내용에 관하여 조금 언급해 보자. 이 노래는 초대 교회가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인식하였는지를 잘 보여 준다. 우리는 목자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가? 아마도 순한 양들을 정성스럽게 돌보고 길을 잃은 양을 찾아 산과 들을 헤매는 인자한 목자상이 떠오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작사한 대부분의 노래들은 그런 분위기를 강조한다. 물론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충분한 것도 아니다. <참 목자 우리 주>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로 소개하지만, 목자 자체를 그리스도의 주된 이미지로 그리는 것은 아니다.
(120쪽)
이와 같이 흑인 노예들이 고통을 당해 온 역사적 배경을 알지 못한다면,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라는 찬송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똑같이 ‘괴롬괴로움의 준말’이라는 단어를 쓴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 단어의 의미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할 수 있을까? 흑인 노예들이 경험했던 괴로움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괴로움이었으며, 아무도 알 수 없는 고통이었다. 이 노래의 원래 가사를 번역하면, ‘아무도 나의 괴로움 모르네Nobody knows the trouble I’ve seen’다.
(281쪽)
캠프 집회에서는 아주 간단한 찬송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것이 집회 밖에서도 널리 부르는 노래로 발전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이 찬송을 배우기도 전부터 이 곡을 이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심지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유치원생 아이들 중에도 이 곡조를 알고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이 곡이 바로 <복남이네 어린아이 감기 걸렸네>의 곡이기 때문이다. 이 노래에서는 후렴(“영광, 영광 할렐루야!”)을 뺐기 때문에 이 곡이 <마귀들과 싸울지라>의 곡과 같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고 놀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302쪽)
한국교회의 신자들은 이 찬송을 주로 장례식에서 많이 부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장례식을 위한 찬송으로 알고 있다. 특별히 “예수 앞에 만날 때”라는 가사는 우리가 나중에 천국에 가서 고인이 된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사실 이 노래를 잘못 부르면 장송곡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노래는 장례식이 아니라 예배의 폐회송으로 지어졌다. 따라서 이 곡의 원래의 의도에 따르면 “예수 앞에 만날 때”는 죽고 나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모여서 예수님께 예배드릴 때를 의미한다. “예수 앞에”로 번역된 원래 가사는 그대로 번역하면 “예수의 발아래”이다.
(3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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