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전형

고신 커뮤니티

저서/논문/기고

기고|저서|논문

고신 커뮤니티연구성과저서/논문/기고

기고 [기고글] 골로새서의 “천사 숭배” - 길성남 교수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4,142회 작성일 08-04-23 16:39

본문


골로새서의 “천사 숭배”

선지동산 45호 게재 / 성경본문 바로읽기(12) / 길성남 교수




골로새서의 난해한 본문인 2장 18절에는 “천사 숭배함”이라는 특별한 표현이 있습니다. 이 표현이 나오는 본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이 본문의 “천사 숭배함”이라는 표현은 헬라어 속격 구문 “뜨레스케이아 톤 앙겔론”을 번역한 것인데, 문자적 번역은 아닙니다. 헬라어 명사 “뜨레스케이아”는 “예배,” 또는 “경건”을 뜻하며, 속격 “톤 앙겔론”은 “천사들의”입니다. 따라서 이 구문의 문자적 번역은 “천사들의 예배”입니다. 대부분의 영어성경에서도 이런 식으로 번역합니다(NASB, NIV, NRSV, ESV: ‘[the] worship of angels’).
그러면 “천사들의 예배”가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째, “사람들이 천사들에게 드리는 예배(숭배)”로 해석하는 것입니다(이것은 속격 “천사들의”를 목적어적으로 취한 해석입니다). 둘째, “천사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해석하는 것입니다(이것은 속격 “천사들의”를 주어적으로 취한 해석입니다). “천사 숭배함”이라는 우리말 번역은 전자의 해석을 따른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골로새서의 주석가들은 “천사들의 예배”라는 구문을 사람들이 천사를 숭배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해 왔습니다. 이 해석에 따르면, 골로새 교회에 침투한 거짓교사들이 천사들을 숭배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적 요소와 헬라의 이교적 요소를 받아들인 혼합적 형태의 이단이었습니다. 그들은 천사들을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중보자, 또는 매개자로 보았고, 천사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천사들을 의지하고 숭배하는 것을 겸손한 행위로 가장했습니다(2:18, “일부러 겸손함”). 거짓교사들의 “공교한 말”(2:4)에 미혹되어 골로새 교회의 일부 성도들은 천사들을 숭배하려 했고,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질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소식을 접한 사도 바울은 급히 골로새서를 써서 거짓교사들의 주장을 논박하고,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해석에는 심각한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골로새서를 기록할 당시나 그 이전에 유대인들과 유대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천사를 숭배했음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해석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제시하는 증거는 후대의 것입니다. 주후 363년에 소집된 라오디게아 회의에서 천사들에게 기도하는 행위를 금한 것이 중요한 증거입니다. 이 결정은 라오디게아 회의를 소집할 당시에 천사들에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전제합니다. 주후 5세기 경에 테오도렛(Theodoret)이 골로새에 천사 숭배를 가르치는 이단이 유행했음을 지적한 것도 중요한 증거로 간주됩니다. 후대에 천사들에게 기도를 하거나 천사들을 숭배하는 일이 있었으므로 그 이전 시대, 심지어 바울 당시에도 그런 일이 있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후대의 증거가 반드시 그 이전 시대의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위의 증거는 지나치게 후대의 것입니다. 거의 400년, 또는 500년 가까이 지난 후대의 자료를 동원하여 바울 당대의 사실을 입증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런 해석을 하는 사람들은 골로새서의 강한 유대적인 요소들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습니다. 본 서신 2장 16절은 골로새 교회에 침투한 거짓교사들이 유대교의 음식법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 법을 매우 엄격하게 준수했음을 알려줍니다. 그들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동일한 율법 조항들을 강요하고, 그 조항들을 준수하지 않는 사람들을 정죄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렇게 강한 유대적인 요소들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성경과 유대교가 금하는) 천사 숭배를 시행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실제로 바울 당대나 그 이전 시대에 유대인들과 유대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천사들을 숭배하거나 천사들에게 기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전무합니다. 그뿐 아니라 “천사들의 예배”라는 구문을 “천사 숭배함”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2장 18절의 또 다른 난해 어구인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 해석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골로새의 거짓교사들에 대한 사도 바울의 논박이 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유대교인들과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 이외의 다른 존재를 숭배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죄입니다. 따라서 거짓교사들이 실제로 천사들을 숭배했다면 사도 바울은 그 행위를 매우 강력하게 배격했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사도는 소위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저주를 선언하기까지 했습니다(갈 1:8-9).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갈라디아 교인들을 하나님을 속히 떠난(갈 1:6)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책망했습니다(갈 3:1, 참조. 5:4). 그런데 골로새서에서 사도의 어조는 상대적으로 온건합니다. 물론 거짓교사들의 문제를 분명히 지적합니다. 골로새의 거짓교사들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성도들을 노략하려 했고, 그리스도와는 무관한 가르침을 전했습니다(2:8, 참조. 2:4). 게다가 그들은 머리(그리스도)를 붙들지 않았습니다(2:19).
그러나 천사들을 숭배한 거짓교사들의 행위는 강하게 배격하지 않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갈라디아의 거짓교사들에게 저주를 선언한 사도가 천사들을 숭배하고 그것을 다른 성도들에게 강요한 골로새의 이단을 강력하게 논박하지 않은 것은 매우 이상합니다.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에 미혹되어 천사들을 숭배하는 일종의 우상숭배의 죄를 범할 위험에 처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강하게 책망하지 않은 것도 이상합니다. 사도 바울은 단지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하고 책망할 뿐입니다(골 2:20-21).
이것은 무엇을 알려줍니까? “천사들의 예배”라는 구문을 “천사들에게 드려진 숭배”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에 침투한 거짓교사들이 천사들을 숭배하지 않았기에 사도 바울이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고, 책망하지도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천사들의 예배”라는 구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속격 “천사들의”를 주어적으로 취하여 “천사들이 (하나님께) 드린 예배”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하나님을 예배했다는 증거는 바울 당시와 그 이전 시대의 문헌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6장에는 스랍들(‘스랍’은 불타는 자라는 뜻이며, 하나님의 보좌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영적 존재들을 가리킴)이 만군의 여호와를 찬양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2-3절, 참조. 단 7:9-10). 누가복음 2장에는 허다한 천군과 함께 천사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14절). 또 요한계시록 5장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큰 음성으로 어린 양을 찬양합니다(11-12절). 천사들이 하나님을 예배한 사실은 유대묵시문헌과 사해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Ian K. Smith, Heavenly Perspective[2006], 126-27).
이 해석에 따르면, 골로새 교회에 침투한 거짓교사들은 신비한 체험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천사들이 천상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장엄한 광경을 보고, 그 예배에 참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런 체험을 신앙의 가장 높은 차원에 속한 것으로 믿었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 중요한 증거로 간주했습니다.  
그들이 환상을 보거나 신비한 체험을 하는 방편으로 중시한 것은, 엄격한 율법 준수와 “일부러 겸손함”(2:18)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일부러 겸손함”이라고 번역한 것은 본래 “겸손”을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입니다(‘타페이노프로쉬네’). “겸손”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덕목입니다(골 3:12). 골로새서 2장 18절에서는 거짓교사들의 행위와 관련이 있으므로 부정적인 개념을 지닌 것으로 해석하여 “일부러 겸손함”(NIV: false humility)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동사형(‘타페이노오’)은 칠십인역(LXX, 구약성경의 헬라어역)에서 종종 “고행하다,” “금식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참조. James D. G. Dunn, Colossians, 179). 또 이 단어 자체는 몇몇 문헌에서 “금식”을 의미합니다. 구약성경에서 금식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전형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유대인들 중에는 금식과 자기 몸을 괴롭게 하는 행위로 자기를 낮추고, 그렇게 하여 천상에 올라서 천사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엄한 광경을 보고자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적 신비주의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골로새 교회에 침투한 거짓교사들은 이런 종류의 유대적 신비주의에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의 일부 조항들을 엄격하게 준수하고 금식을 하고 자기 몸을 괴롭게 하는 방식으로 환상을 비롯한 신비 체험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성숙하는 길을 걷기보다 환상과 체험을 통해서 최고의 경건과 영적 지식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체험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리스도보다 체험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았습니다. 기독교를 그리스도 중심적인 종교가 아니라 체험 중심적인 종교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런 해석은 골로새서 2장 18절의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라는 구절과 잘 어울립니다. “그(가) 본 것들”(원어에는 복수)이란 신비한 체험을 하는 동안에 거짓교사들이 본 환상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천사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하늘에 속한 신비한 것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본 환상을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짓교사들은 자신들이 본 것들을 자세히 이야기 하면서(BDAG §3, ‘go into detail’) 과시했고, 그것들로 인해서 교만해졌습니다(2:19). 또한 그들은 골로새 교회에 침투하여 자신들의 체험을 과장하면서 같은 체험을 하도록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부추겼을 것입니다.    
이처럼 “천사들의 예배”라는 구문을 “천사 숭배”가 아니라 “천사들이 하나님께 드린 예배”로 해석하면, 체험보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치아가 금으로 변하는 현상에 열광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보다 체험이나 신비한 은사적 현상 자체를 더 중요하게 여길 위험이 상존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물론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자 체험의 종교입니다. 체험이 없는 신앙은 영적으로 건조하고 온전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체험을 추구하거나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다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믿음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비 체험을 추구하기보다 위엣 것, 곧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그리스도를 찾아야 합니다(골 3:1-4). (다음호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03건 5 페이지
기고|저서|논문 목록
[기고글] 사도바울은 승리자인가, 하나님의 포로인가? - 길성남 교수
사도바울은 승리자인가, 하나님의 포로인가? 선지동산 48호 게재 / 성경본문바로읽기(15) / 길성남 교수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고린도후서 2장 14절의 전반절을 믿는 자의 승리를 말하는 본문으로 읽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이기게 하실…
2008-10-08
[기고글] 권면과 충고 - 하재성 교수
권면과 충고 하재성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목회상담학) \'누구를 위한 권면인가\' 권면은 충고와 다르다. 충고는 때로 내가 가진 진단과 처방으로 상대방을 바꾸어야 하겠다는 성급한 조언이다. 충고는 듣는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기도 …
2008-09-05
[기고글] 제2의 축복은 있는가? - 박영돈 교수
제2의 축복은 있는가? 선지동산 47호 게재 / 성화의 복음(7) / 박영돈 교수 내게 찾아온 뜻밖의 은혜   스티브 맥베이 목사는 그가 쓴 베스트셀러 『내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그의 삶과 사역을 획기적으로…
2008-07-02
[기고글] 목회의 생명은 목회자의 죽음에서 비롯된다 - 김순성 교수
목회의 생명은 목회자의 죽음에서 비롯된다 - 목회자들이여, 자기 죽음을 경험하라 - 선지동산 47호 게재 / 목회리더십과영성(13) / 김순성 교수 목회자로서 당신의 목회가 행복하다고 느끼는가?   &nbs…
2008-07-02
[기고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 - 길성남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로새서 1장 24절 해석 선지동산 47호 게재 / 성경본문 바로읽기(16) / 길성남 교수 골로새서에서 가장 난해한 본문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
2008-07-02
[논문] 고신교회는 언제 시작되었는가? - 이성구
고신교회는 언제 시작되었는가? - 1977년 \'고신 30주년 기념 대성회\'와 고신 창립 기산 문제 - 이성구 교수 * 이 논문은 고신역사연구소가 2008. 6월 발행한 \'한국교회와 역사\' 창간호에 실린 글이다 * 제기되…
2008-07-02
[시론] 여유를 가지자 - 한정건 교수
여유를 가지자 한정건 교수   필자의 마을 입구에 “미친소 몰고오는 FTA 결사반대”라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그 현수막을 보면 “미국 소”=“미친 소”라는 등식이 성립되며, 그러므로 FTA는 목숨을 걸고 반대하겠다는 것…
2008-06-09
[기독교보] 부족한 기독교가 아닌 지혜로운 기독교 - 하재성 교수
“부족한 기독교”가 아닌 “지혜로운 기독교”! 하재성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최근 기독교가 심리학에 물들어 부족하다는 말을 접하면서 바울이 고기 먹는 일로 로마 교회에 권면하였던 것을 생각한다. 바울은 의심하고 고기를 먹지 못하는 연…
2008-05-09
[기고글] 사랑의 강권 - 박영돈 교수
사랑의 강권 선지동산 46호 게재 / 성화의 복음(6) / 박영돈 교수 계속되는 칭의   한국교회가 그동안 칭의 교리를 지나치게 강조했기에 교인들의 윤리적 수준을 저하시켰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사실 한국교회의 …
2008-04-23
[기고글] 건강한 영성은 바른 생각을 통해 형성된다 - 김순성 교수
건강한 영성은 바른 생각을 통해 형성된다 - 목회자들이여, 생각과 마음을 지키라 - 선지동산 46호 게재 / 목회리더쉽과 영성(12) / 김순성 교수 평소의 삶에서 당신이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
2008-04-23
[기고글] 아라비아에서 보낸 삼 년 - 길성남 교수
아라비아에서 보낸 삼 년 선지동산 46호 게재 / 성경본문 바로읽기(13) / 길성남 교수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뒤 사도 바울은 아라비아로 갔고, 거기서 3년 동안 체류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7절에서 그는 자신이 회심한 …
2008-04-23
[기고글] 성화의 즉각성 - 박영돈 교수
성화의 즉각성 선지동산 45호 게재 / 성화의 복음(5) / 박영돈 교수 오늘날 강단에서 전파되는 성화에 관한 많은 설교들은 온통 신자의 책임과 사명, 그리고 열심을 고취시키는 윤리적인 지침과 권면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예수와 그의 십자…
2008-04-23
[기고글] 깊은 영성은 어두운 밤을 지나면서 형성된다 - 김순성 교수
깊은 영성은 어두운 밤을 지나면서 형성된다 - 목회자들이여, 내면의 중심으로 들어가라 - 선지동산 45호 게재 / 목회리더쉽과 영성(11) / 김순성 교수 열심있는 기도생활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영적 메마름과 공허함을 느낀 적이 없…
2008-04-23
[기고글] 골로새서의 “천사 숭배” - 길성남 교수
골로새서의 “천사 숭배” 선지동산 45호 게재 / 성경본문 바로읽기(12) / 길성남 교수 골로새서의 난해한 본문인 2장 18절에는 “천사 숭배함”이라는 특별한 표현이 있습니다. 이 표현이 나오는 본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2008-04-23
[기고글] 칭의는 복음, 성화는 율법? - 박영돈 교수
칭의는 복음, 성화는 율법? 선지동산 44호 게재 / 성화의 복음(4) / 박영돈 교수 ‘구원받기는 쉽지만 거룩하게 살기는 참 어렵다.’ 이것이 아마 대부분의 개신교 신자들이 신앙생활하면서 맛보는 당혹스러움일 것이다. 칭의라는 희소식에 …
2008-04-23
[기고글] 깊은 영성은 깊은 기도를 통해 샘솟는다 - 김순성 교수
깊은 영성은 깊은 기도를 통해 샘솟는다 - 목회자들이여, 깊은 기도를 경험하라 - 선지동산 44호 게재 / 목회리더쉽과 영성(10) / 김순성 교수 최근 기도 중 당신이 하나님 임재의 감격과 기쁨을 경험한 적이 언제인가? 하루…
2008-04-23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