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글] 목회의 생명은 목회자의 죽음에서 비롯된다 - 김순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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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의 생명은 목회자의 죽음에서 비롯된다
- 목회자들이여, 자기 죽음을 경험하라 -
선지동산 47호 게재 / 목회리더십과영성(13) / 김순성 교수
목회자로서 당신의 목회가 행복하다고 느끼는가?
그 행복의 근거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목회를 하면서 기도를 통해 자아가 깨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목회자들을 만나면서 종종 이런 말을 듣게 된다. “나는 목회가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신바람이 나서 나는 목회한다.” 소위 목회를 성공적으로 하는 분들의 고백이다. 자기가 하는 일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그 일에 대해 의욕과 자신감이 넘치고 자신에 대해 자긍심이 있다는 말이다. 자기가 하는 일에 의욕과 만족이 없고 자기 자신에 대해 긍지가 없다면 거기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그 행복과 즐거움의 근거가 무엇인가이다. 자신이 받은 소명의 독특성 때문에 목회에 임하는 목회자 한 사람의 자세와 태도가 교회전체의 생명을 좌우한다. 하나님이 교회에 목회자를 세우신 이유가 무엇인가?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에 의하면 “그를 통하여 성도들이 참으로 신자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과 복을 인격과 삶으로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보여주기 위해 목회자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목회자 자신이 그 은혜와 복으로 충만할 때 성도들도 행복하고 목회자가 그 복을 누리지 못하면 성도들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목회대상 1호는 다름 아닌 목회자 자신이다. ‘자기’ 목회가 양떼들 목회에 우선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몇 백 명, 몇 천 명 목회보다 더 어려운 것이 목회자 자신을 목회하는 일이다. 만약 ‘자기’ 목회에 성공한 목회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양떼들의 숫자와 상관없이 목회의 성공자라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런 목회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자기목회, 양떼목회 모두 실패한 경우는 차치하고 수백 수천 명의 목회에 소위 성공하고도 정작 자기목회에 실패한 목회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자기목회의 핵심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죽음이다. 목회자 자신이 죽는 것이다. 고집스럽고 완고하고 탐욕스럽고 교만하고 악한 자아가 십자가의 은혜로 깨어지는 것이다. 진주조개의 단단한 껍질이 깨어져야 그 속에 진주가 빛나는 것처럼 목회자의 자아가 죽는 만큼 그 속에서 예수의 생명이 역사한다. 목회의 생명, 목회자의 참된 행복이 여기서 비롯된다. 목회자가 아무리 자신을 행복하게 여겨도 그 행복이 자기죽음에 기초하지 않는 것이라면 성경이 약속한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그 어떤 일보다도 자신이 죽는 일을 목회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죽어야 할 자아의 정체가 무엇인가? 성경에서 ‘육신’으로 표현되는 이 자아의 정체는 한 마디로 자기사랑이라는 죄성이다. ‘내’가 만족하고, ‘내’가 드러나고, ‘내’ 주장을 관철시키고, 자신을 극대화하면서 ‘나’를 우상화하는 일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자아의 본질적인 성향이 곧 자기사랑이다. 이 부패한 자아는 심지어 거룩한 일을 하면서도 ‘자기’ 뜻, ‘자기’ 유익을 추구한다. ‘내’ 교회, ‘내’ 목회를 자랑하면서 목회의 무게중심을 늘 자기에게 두고 자기에게 집착한다. 하나님을 이용해서라도 ‘자기’ 영광을 추구한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 특히 목회자들이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나’를 높이고 ‘나’에게 관심을 집중시키고 ‘나’를 극대화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이 시대가 계속해서 소리치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자기애(自己愛)를 모든 죄의 뿌리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사랑은 자아존중이 아니라, 자아숭상을 뜻한다. 자기애의 근저에는 언제나 자기생각, 자기 뜻을 절대화하는 자기숭배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이 자기사랑의 뿌리에서 교만, 분노, 시기, 나태, 탐욕(재물욕), 정욕 등 각종 죄의 열매가 뒤따른다. 성경은 자기사랑에 기초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될 뿐만 아니라,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7-8).
육신은 우리 영혼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애라는 죄와 악으로 기울어지게 하는 경향성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가 바로 내 안에 있는 것이다. 그 원수가 바로 내 속에 습관화되고 체질화되어 있는 부패한 내 본성이다. 자신이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근본적으로 거스르고 끊임없이 자기사랑을 강요하는 나의 이 부패한 본성이 파괴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애로 똘똘 뭉친 단단한 자아의 껍질을 계속해서 부수고 깨트리는 것이다. 이 껍질은 워낙 견고해서 하루아침에 깨어지지 않는다. 주님 앞에 설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날마다 죽어야 하는 것이다.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오직 성령의 은혜로 가능하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3-14).
오웬은 성령께서 세 가지 방식으로 우리 안에 있는 죄를 죽이신다고 설명한다. 첫째 우리 안에 성령의 은혜가 흘러 넘쳐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심으로 죄를 죽이신다. 둘째 죄의 뿌리와 습관에 ‘진정한 물리적 효능’을 발하여 그것을 약화시키고, 멸하시고, 제거하신다. 성령의 칼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거하시고 성령의 불로 더러운 정욕의 뿌리를 태우신다. 셋째 믿음으로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고난에 동참하게 하심으로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게 하신다. 자기애, 자기의(自己義)를 기꺼이 부정하고 하나님의 의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게 하신다. 내 삶에 그리스도가 살기 위해 ‘내’가 죽는 길을 기꺼이 선택한다. 내가 손해보고 내 자존심이 상할지라도 ‘내’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교회를 먼저 생각하고, ‘내’ 뜻, ‘내’ 영광이 아니라, ‘주님’의 뜻, ‘주님’의 영광을 먼저 추구하게 된다. 그 결과 나의 인격, 나의 삶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발하고, 나의 교회, 나의 목회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역사하게 된다. 우리 마음이 성령으로 온전히 인도함을 받게 될 때 우리는 신분적으로만 아니라, 내용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진정으로 그분을 사랑하고 오직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기죽음을 경험할 수 있는가?
1.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목회에 ‘내’가 주인됨을 포기하기로 결단하라.
교인수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을 제치고 ‘내’가 목회의 주인이 되려는 마음의 태도가 문제이다. 나는 세움 받은 ‘종’일뿐, 내 목회의 주인은 주님이심을 기억하라. 그분의 뜻을 떠나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존재임을 겸손히 인정하라. 주님께서 친히 내 목회의 주인이 되셔서 앞장서 이끄시는 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순종하며 따르기를 결단하라.
2, 자신 속에 있는 죄의 실체를 파악하고 평소에 늘 자각하라.
목회해 오면서 자신이 죽는 일을 위해 그 동안 어떤 노력을 했는가? 목회경력이 늘어갈수록 자아가 점점 더 완고해지는 경향이 있다. 매일 자기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라. 자기사랑이 내 속에 어떤 모습으로 습관화, 체질화되어 있는지 그 죄의 실체를 지속적으로 파악하라. 필요하다면 마음을 열고 가족이나 측근의 도움을 구하라. 그리고 당신 속에 도사리고 있는 바로 그 죄가 당신의 목회 생명을 빼앗고 죽이는 원수임을 늘 자각하라. 앞으로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그 죄의 뿌리를 파괴하는 것을 목회 최우선으로 삼기로 결심하라.
3. 묵상을 통해 말씀의 빛과 거울에 끊임없이 자신을 조명하라.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영광, 거룩, 선하심을 묵상하라. 말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붙잡으라.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자신의 내면에 비쳐올 때 비로소 자아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 은밀한 죄, 체질화된 죄, 자기사랑으로 교묘하게 위장된 다양한 죄들, 그리고 그 죄의 독소를 보고 진심으로 회개하게 된다. 기억하라. 죄는 다양한 방법으로 당신이 그 분의 말씀 앞에 나아가지 않도록 끈질기게 역사하게 될 것을.
4. 마음을 쏟는 기도의 삶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라.
죄를 죽이는 일은 성령만이 하실 수 있다. 그런데 성령은 기도를 통해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신다. 마음을 쏟아 기도할 때 기도의 칼이 죄를 찌르고 죽인다. 기도와 죄는 양립할 수 없음을 기억하라. 기도는 죄를 죽이고 죄는 기도를 죽인다. 당신의 삶에 기도가 죽어있다면 지금 죄가 승리하고 있는 것이다. 끈질긴 기도의 실천으로 죄를 공격하라. 죄보다 강력한 성령의 은혜가 죄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파괴할 것이다.
(다음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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