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글] 수가성에서 메시아를 만난 여인 - 길성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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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성에서 메시아를 만난 여인
(요한복음 4:4-42)
요한복음 4장에는 한 사마리아 여인이 수가(Sychar)라는 동네에 있는 야곱의 우물 곁에서 예수님을 만나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과거에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은 다른 남자와 동거하고 있는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제육시쯤 물을 길러 나왔다가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앉아 쉬고 계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제육시는 우리 시간으로 정오입니다(요한복음이 로마의 시간체계를 받아들였다고 보는 학자들은 오전 6시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셨다\"는 6절의 진술은 이른 아침 시간보다는 더운 낮 시간에 더 잘 어울립니다). 대체로 여인들은 뜨거운 낮을 피해서 저녁 시간에 물을 길러 나옵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 여인은 한낮에 물을 길러 나왔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과거에 다섯 번이나 결혼했고 지금 여섯 번째 남자와 동거하고 있는 사실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 요한복음 해설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 여인은 여러 번 결혼생활에 실패하였고 지금은 여섯 번째의 남자와 같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 . 동네 사람들의 눈총과 경멸은 날이 갈수록 심했고 그것을 견디기가 어려워 그녀는 감히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데이비드 E. 홀베르다, 「요한복음」, 56).
이 사마리아 여인이 과거에 다섯 번 결혼하고 현재 여섯 번째 남자와 동거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하고 답하는 여인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18절). 문제는 이 여인이 어쩌다가 이렇게 다섯 번이나 이혼을 하고 여섯 번째 남자와 동거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해석은 이 여인을 육체적인 만족을 추구한 자유분방한 사람으로 보는 것입니다. 육체의 만족을 얻기 위하여 남자를 바꿔가면서 여러 차례 결혼을 했다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이 사마리아 여인은 구약성경 호세아서에 등장하는 고멜과 같은 음란한 여자입니다. 레온 모리스도 이 여인을 \"자유롭게 여러 번 이혼한 상습녀\"라고 합니다(「요한복음(상)」, 326). 이런 해석은 교회 안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성가에서도 이 여인을 육신의 만족을 위하여 헛되고 헛된 것들을 구한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 . .”
그런데 과연 이런 해석은 아무 문제가 없을까요?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 당시 사마리아 사회에서 여자가 자기 마음대로 다섯 번씩이나 결혼하고 이혼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유대사회의 경우에 여인들이 남편을 설득하여 자기와 이혼하게 만드는 법적 행동을 할 수 있었으나,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남편과 이혼할 수는 없었습니다. 독일 괴팅겐 대학의 신약학 교수였던 요아힘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남편이 오물 수거자(개똥 수거자), 무두장이, 구리 대장장이일 경우 아내는 이혼을 요구할 수 있었다. 이런 직업을 가진 줄 알고도 결혼한 여자도 남편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참을 수 없을 때 이혼을 요구할 수 있었다. 또 남편이 아내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일을 하도록 강요하거나 남편이 나병이나 종양에 걸린 경우에 이혼을 요구할 수 있었다. 그 밖의 경우에는 이혼을 요구할 권한이 오직 남편에게만 있었다(「예수 시대의 예루살렘」, 388-89).
예수님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자에게 이혼을 요구할 권한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혼을 요구할 권한은 오직 남편에게만 있었습니다. 또 여자는 이혼을 당했더라도 2번, 또는 3번 정도만 다시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사마리아 사회는 어떠했을까요? 유대사회와는 달리 여자가 얼마든지 이혼을 요구하고 자기 마음에 드는 남자들을 만나 몇 번이고 결혼할 수 있을 만큼 자유분방한 사회였을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참 이스라엘,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의 상속자로 믿었습니다. 또 모세 오경을 권위 있는 경전으로 받아들였습니다(「예수 복음서 사전」, 498-504). 따라서 아내를 내어 보낼 때에는 이혼 증서를 써주라는 신명기의 말씀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신 24:1-4). 이 본문은 이혼을 요구할 권한이 남편에게 있음을 전제합니다. 따라서 사마리아 사회에서도 여자에게는 이혼을 요구할 권한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자가 이혼을 요구할 수 없는 사회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다섯 차례나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두 번째 문제는,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알고 계시면서도 그 여인을 책망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들린 여인에게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요 8:11). 마찬가지로 만일 사마리아 여인이 육체의 만족을 위하여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면 예수께서 그 여인의 부도덕한 행실을 지적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시거나, 아니면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남편이 없다고 한 그 여인의 말이 \"참되도다\"라고 하셨을 뿐 그 여인의 행실을 더는 문제 삼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예배와 관련해서 그 여인에게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주시고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달려가서 예수님을 증거하게 하셨습니다(4:28-29).
이상의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사마리아 여인이 육신의 만족을 위하여 자기 마음대로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고대사회에 비해서 놀라울 정도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된 현대 사회에서도 여자가 마음대로 남자를 바꿔가면서 다섯 번이나 결혼하고 이혼하는 것은 보기 힘든 일입니다). 사실 그 여인은 남편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남성 중심적인 사마리아 사회에서 그 여인은 희생자였습니다. 아마도 그 여인은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도 남을 정도의 미모와 매력을 소유했을 것입니다. 사마리아 남자들은 그 여인과 결혼해서 살아보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그 여인에게는 불임(不姙)과 같은, 남이 알지 못하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인과 결혼한 남자들은 한동안 함께 살다가 문제가 드러나자 여인을 버렸을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이런 일을 다섯 차례나 겪었습니다.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것이 지긋지긋하고 참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사회에서 여자 혼자 사는 것이 몹시 힘들었기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와 살림을 차렸을 겁니다. 어쩌면 그 여인은 다섯 남편과 차례로 사별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분명한 것은, 그 여인이 육체의 만족을 위해서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음란한 여인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다섯 번의 결혼과 이혼과 관련해서 사마리아 여인 자신에게 그다지 잘못이 없었기에 예수께서 그의 행실을 문제 삼지 않으신 것입니다.
만일 이런 해석이 옳다면 요한복음 4장의 주된 교훈은 무엇일까요? 헛되이 육체의 욕망을 추구하던 음란한 여인에게 예수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 즉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만족을 약속하셨다는 것입니까? 사람들에게 버림 받고 고통당하던 이름 없는 여인을 만나 주시고 그런 여인에게도 놀라운 영적 진리와 함께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려주셨다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알려주신 놀라운 영적 진리는 예배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예배 장소에 대해서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야곱은 그리심 산 가까운 곳에 제단을 쌓았습니다(창 12:7; 33:20). 또 그리심 산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축복을 선포한 곳입니다(신 11:29; 27:12). 게다가 사마리아 오경의 신명기에는 에발 산이 아니라 그리심 산에 제단을 쌓으라고 되어 있습니다(신 27:4-6). 실제로 사마리아 사람들은 기원전 400년경에 그리심 산에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기원전 128년에 하스모니아(마카비) 왕 요한 힐카누스가 사마리아 성전을 파괴한 뒤에도 사마리아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 성지에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예수님께 예배 장소에 관해서 질문했습니다(요 4:19-20). 예수님의 답변의 핵심은,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것입니다(4:24).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어느 곳이나 임재하시며 언제 어디서건 예배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 말씀과 함께 예수님은 예배의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선언하셨습니다(4:21, 23).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그리심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때가 오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것입니다(4:23, 24). 이 본문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정성을 다하여 진심으로 예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옛 시대에도 하나님을 올바르게 예배하는 자들은 \"정성을 다하여 진심으로\" 예배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비로소 시작된 새로운 시대에는 \"성령 안에서, 그리고 진리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만이 아버지의 품속에 계시던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고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놀라운 진리를 니고데모와 같은 경건한 유대인이나 자신의 제자들이 아니라 사마리아 여인에게 최초로 들려주셨습니다. 다섯 번이나 이혼을 당하고 사람들의 멸시를 받던 여인이 예수님과 단독으로 대화했을 뿐 아니라 세상에서 처음으로 예배에 관한 놀라운 말씀을 듣다니요.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도 그 여인에게 알려주십니다(4:26). 얼마나 복된 여인입니까? 결국 이 여인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최초로 전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수가성 사람들이 이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다고 증언합니다(4:39, 42).
이 여인을 통해서 예수님은 \"절반의 유대인,\" 또는 부정한 이방인과 같은 취급을 받던 사마리아 사람들도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고, 성령 안에서, 그리고 진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새 백성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따라서 이 여인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한 것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린 사건이며,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빌립과 사도들이 수행할 사마리아 선교(행 8:4-25)를 미리 보여주는 중대한 사건입니다.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고 멸시와 고통을 당하던 이름 없는 사마리아 여인을 예수께서 만나주시고 그 여인을 통해서 이런 중대한 구원 역사를 이루신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오늘날에도 사마리아 여인과 같은 뜻밖의 인물을 통해서도 중대한 구원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주님을 찬양합시다.
선지동산 49호 게재 / 성경본문바로읽기(16) / 길성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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