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글] 참된 기도는 듣는 것이다 - 김순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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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기도는 듣는 것이다
당신의 기도는 어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가?
당신은 기도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는가?
자신의 기도생활에 무언가 한계를 느껴본 적은 없는가?
“믿음이란 한마디로 기도다.” 종교 개혁자 루터의 말이다. 신앙생활에서 기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말이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같이 기도의 사람이다. 능력 있는 목회자를 보라. 예외 없이 기도의 사람이다. 살아있는 기도에서 능력 있는 말씀이 나오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은혜가 임한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교회 안에 기도가 사라지고 있다. 온갖 목회방법이 기도를 대신하고 있다. 교회의 부흥을 원하는가? 무엇보다도 기도가 회복되어야 한다. 기도가 회복되려면 먼저 기도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어야 한다. 기도가 무엇인지 기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기도는 내가 ‘행해야’ 하는 그 무엇이 아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에 자신을 여는 것이다. 기도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내가 기도하기 전에 ‘이미’ 우리 삶에 영으로 임재해 계신다. 내 믿음이 연약해서 넘어지고 지쳐 쓰러져 기도할 힘을 잃고 있을 때도 하나님은 영으로 나와 함께 계신다. 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내 편에서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영으로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의식할 수 있는가? 기도를 통해서다. 기도 없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할 수 없다. 기도 없는 자에게 하나님은 죽은 관념일 뿐이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에 마음을 열고 그분의 말씀에 반응할 때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과 더 깊고 친밀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결과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그분의 마음과 뜻에 일치된 변화의 삶을 누리며 살게 된다.
이처럼 기도의 본질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형성이다. 그러므로 기도란 내 편에서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으로 이미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 말씀으로 지금 나를 찾아오시는 하나님께 영혼의 귀를 기울이고 ‘듣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구송기도(verbal prayer)가 교회 안에 보편적인데 하나님께 말로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도 사실은 듣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그분의 마음과 뜻을 듣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 기도에 대한 최고의 응답은 하나님 자신이다(눅11:13).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영으로 내주하신 하나님을 이미 선물로 받았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의 최고의 특권과 목표는 기도를 통해 이 하나님과 하나 됨의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통용되고 있는 기도의 근본 문제점이 무엇인가? 기도의 초점이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필요라는 것이다. 기도란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구하고 응답받은 것으로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기도가 문제해결 위주의 119 비상전화로, 하나님은 119 비상 구조원으로 전락된 것이 오늘 우리 기도의 현주소가 아닌가? 불행하게도 기도가 하나님 자신을 구하는 거룩한 은혜의 방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실용적인 도구가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요즘 한국교회에 관상기도(contemplative prayer)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카톨릭 교회와 개신교 비보수주의 진영을 통해 소개된 카톨릭 전통의 관상기도가 최근에는 보수주의 교회에까지 관심이 확산되고 있다. 물론 오늘날 회자되고 있는 관상기도란 수도원 전통의 신비주의적 관상기도가 아니라,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평신도들을 위해 계발된 현대적 관상기도로서 향심기도, 또는 구심기도(centering prayer)라고 불리는 것이다. 근자에 미국의 저명한 영성신학자 달라스 윌라드가 기획한 영성계발 시리즈로 “경청기도(원제: When the soul listens)”라는 제목의 책이 발간되었는데 청교도 전통에 기초한 말씀중심의 묵상기도와 현대적 관상기도를 접목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일종의 개신교적 관상기도인 셈이다. 물론 여기서는 신비주의적 관상기도를 배격하며 깊은 자아성찰과 함께 순종의 삶을 강조하고 있다.
왜 갑자기 이런 생소한 기도가 한국교회에 유행하고 있는가? 여기에는 물론 경계해야할 부분도 없지 않지만, 분주하고 경쟁이 치열한 성취 지향적 현대문화 속에서 전통적인 기도방식으로는 채워지지 않은 현대인들의 영적 갈증 해소를 위한 일종의 대안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관상기도 또는 경청기도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성경과 교회의 오랜 전통적 유산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특별히 말씀중심의 묵상기도를 관상기도와 접목한 경청기도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 동안 교회 안에 통용되어온 복음주의 전통의 구송기도가 현대문화 속에서 놓쳐버린 기도의 새로운 차원을 일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경청기도는 무엇보다도 기도의 초점이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하여 하나님의 임재로 우리 마음을 채우는 기도이다. 그 결과 우리 영혼이 주님 품에서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기도이다(시131:2). 뿐만 아니라, 고요와 침묵 속에서 잠잠히 하나님께 마음을 올려드림으로써(시62:1)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일하시게 하는 기도이다. 복음서의 마르다와 마리아의 사건에서 일보다는 현존하시는 예수님께 전적으로 관심을 집중하여 주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주님께 칭찬받았던 마리아의 모습이 경청기도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경청기도만이 성경적 기도라는 말은 아니다. 특정시간, 특정장소에서 소리 내어 부르짖는 구송기도 역시 우리가 고수해야할 성경적 기도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단지 개신교 전통에서 그 동안 간과되어온 또 다른 성경적 기도의 유산을 함께 나눔으로써 영성계발의 한 분야로 활용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영혼을 인도하는 목회자는 누구보다도 깊은 영적 세계를 체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경청기도는 과다한 업무로 지쳐있는 목회자들에게 쉼과 영적 재충전을 얻을 수 있고, 특정 기도시간을 뛰어넘어 일상생활 속에서도 깨어서 기도의 마음을 유지하게 하는 유용한 기도방식이다.
그렇다면 경청기도의 중요 원리와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1.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라.
경청기도의 중요한 전제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확신이다. 하나님이 영으로 지금 여기에 나와 계심을 믿는 믿음이 중요하다. 그리고 영혼의 시선을 하나님께 집중하는 구체적은 방법으로 기도할 때 한 단어(아버지, 주님, 사랑, 평안 등) 또는 짧은 구절(주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만 흥하고 나는 쇠하게 하소서. 나의 걱정 근심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주님의 평안을 받아들입니다. 등)만을 20분 정도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형식의 기도만으로도 주님의 임재 안에서 쉼과 평안을 경험할 수 있다.
2.긴장을 풀고 자신의 생각, 감정, 관심사를 내려놓으라.
엄마의 품에 안긴 아기처럼 주님의 임재 앞에서 현재 나의 필요, 소원, 욕구, 주변 관심사를 다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연약한 자아의 모습으로 서야 한다. 하나님 앞에 잠잠해지는 법을 배우려면 평소 말수를 줄이고 침묵을 통해 내적고요를 훈련할 필요가 있다.
3.말씀을 깊이 묵상하라.
경청기도를 더 깊이 효과적으로 하려면 말씀에 대한 묵상이 선행되어야 한다. 특별히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이나 행동,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거룩한 상상력과 오관을 동원하여 본문의 현장 속으로 뛰어들어 본문 속의 인물과 자신을 일치시켜 묵상하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특별히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성품을 깊이 묵상하라.
4.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을 하라.
경청기도의 하이라이트는 묵상을 통해 내면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주님의 음성은 사랑, 위로, 약속, 비전제시, 책망, 도전 나아가 하나님 자신의 마음(슬픔, 고통) 때로는 긴 침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은 오랜 훈련을 필요로 하는 일인데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하나님께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말씀 자체에 대해서 또는 당면한 현안에 대해서 가능한 구체적으로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5. 순종의 삶으로 응답하라.
경청기도의 열매는 신비체험이 아니라, 자아성찰을 통한 회개와 순종의 삶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려올 때 억지로가 아닌, 자발적으로 기꺼이 순종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일이 반복되면서 경청기도는 ‘해야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고 싶은’ 기도가 된다. 그 결과 기도의 마음이 삶 전체로 확장되면서 하나님과 점점 더 친밀한 관계 속으로 나아가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
선지동산 50호 게재 / 목회리더십과영성(16) / 김순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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