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글] 선교책무,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됩니다 - 이신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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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책무,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됩니다!
한국의 개신교회 선교의 역사는 100년이 넘었으나, 교회들의 적극적인 후원을 통하여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운동이 점화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서울 올림픽을 지나고, 국내 교회의 성장세가 조금 완만해지고 있던 1990년대에 선교사 파송은 오히려 더 왕성하게 불이 붙었다. 지금은 한국 선교사들이 미치지 않은 국가가 거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서구 교회들은 선교의 역량이 고갈되었고 미국 교회들까지도 해외 선교의 힘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는데, 한국의 개신교회는 세계선교의 다음 주자로 인정을 받을 만큼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여, 이제 선교사를 두 번째로 많이 파송한 국가라고 은근히 자랑도 많이 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개신교회 및 선교단체의 선교지도자들은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현장의 상황을 통하여 피부로 인식한 듯이 선교사의 책무(accountability)에 대해서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선교사들이 들으면 섭섭하게 여길 만한 비판들이 여기 저기에서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선교사들은 선교단체나 교회의 선교적 책무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많은 것 같다. 교회, 교회선교회 또는 선교단체, 그리고 선교사들이 모두 그 동안 선교를 어떻게 해 왔는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따져 보고 삼가야 할 것과 폐해야 할 것을 가려 내어야 할 때이다. 그 동안 선교사를 좀 더 많이 파송하고 후원하기 위해 힘을 쏟았다면, 이제는 파송과 후원 뿐 아니라 투명성과 책무를 확보하기 위한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상호신뢰를 튼튼히 해야 할 때이다.
책무를 강조하면 서로 따지고 비난하고 배제하는 무서운 칼날이 난무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되기도 한다. 책무는 먼저 선교의 주인되시는 하나님 앞에 마지막 날에 다 각자가 행한 대로 회계해야 할 때가 있음을 기억할 뿐 아니라, 지금도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위를 익히 아시는 하나님 앞에 각자가 자기의 신앙 양심으로 자신을 살펴보고 회개하는 매일의 삶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코람데오 (Coram Deo)의 정신이 책무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책무는 하나님과 나의 수직적 차원에서 거리낌이 없다고 하여 완결된 것은 아니다. 각 사역자들은 교회와 동역자들이 신실하다고 인정하여 위임해 준 역할을 올바로 감당해야 할 수평적 책무를 교회와 동역자들에게 지고 있다. 자율적으로 수평적 책무를 다 하는 신실함이 있어야 하지만, 수평적 책무의 타율적 요구는 공적인 타당성을 갖춘 것이어야 하고 정도에 있어서 필수불가결성을 띤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당하게 동료를 배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용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책무를 요구하는 주체도 수평적 책무의 요구로부터 초월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수평적 책무 체계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다 연약한 인생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원치 아니하는 실수와 실패에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건전한 책무 관리의 체계를 통하여 서로를 예방적으로 보호하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적기에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수평적 책무에 대한 요구는 홀로 성립되지 않는다. 이와 동시에, 아니 그 이전에 서로를 돌아보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권면함이 우리를 더 건전하게 세울 것이다. 그렇지만 수평적 책무 체계를 누구든지 수용하고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기 때문이며, 우리 자신 보다 하나님의 나라의 의를 구함이 우선임을 동의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교회 담임목사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유능한 선교지도자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오래된 선임 선교사라고 하더라도 이 수평적 책무의 관리 체계를 따라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교의 수평적 책무 관리의 분야는 크게 보아, 재정, 사역, 삶의 분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신교에 있어서 실로 다양한 분야에 책무적 관리가 필요하다. 몇 가지만 지적해 본다면, 선교사역에 있어서 자립하는 개혁주의 교회를 선교사를 파송한 지역마다 세우기로 하였다면 그 목표에 따라 선교사역이 어우러지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할 것이다. 선교사 배치에 있어서도 선교사 개인의 선호 위주가 아니라, 선교현지의 필요와 선교본부의 선교전략적 목표에 따라야 할 것이다. 선교부는 중 장기 정책과 전략을 수립함으로써 임기응변의 선교수행으로 인한 중복이나 낭비를 예방해야 할 것이다. 선교사 관리를 철저히 함으로써 중도탈락율을 줄여야 할 것이다. 위기관리 시스템을 준비함으로써 전쟁, 재난, 질병 등에 대비해야 한다. 지역교회들이 선교비를 후원할 때에도 공정한 후원 선교사 선정이 필요하고, 함께 개혁주의 교회를 건설하기로 합의하였다면 모든 교회가 총회 세계선교위원회를 통하여 세계선교에 함께 참여해야 할 것이다. 미자립, 미조직 교회들은 아직 마음껏 선교후원에 참여하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있지만, 가능한 한 모든 교회들이 총회 세계선교위원회를 통하여 총회 파송 선교사들을 후원하는 일에 책무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선교사를 훈련하고 선발하는 과정도 더 책임있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목사 선교사는 현지에서 개혁주의 교회를 설립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그 훈련과 선발에 있어서 공교회적인 관심과 책임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목사후보생의 교육과 훈련을 신학대학원에 위탁하듯이 목사 선교사 후보생도 신학대학원에 위탁하여 훈련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신학대학원도 이런 책임있는 훈련을 감당하기 위하여 필요한 교수와 교육과정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선교본부도 선교행정의 제반 분야에 대해서 교회의 아낌없는 신뢰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행정 투명성을 더욱 높여 가야 한다. 재정 분야에서 어느 교단 선교에 뒤지지 않게 체계가 잘 잡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교단은 선교사의 후원비가 거의 100% 선교본부를 통하여 선교사에게로 전달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재정투명성을 더욱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고신 세계선교위원회는 지금 현지선교부의 재편을 진행중에 있다. 부디 선교사님들 개별적 선교사역의 의식을 좀 지양하고, 현지에서 실제적 기능을 갖춘 현지선교부를 중심으로 함께 동역함으로써 선교 현지사역의 수평적 책무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선교사의 현지 재산관리 및 등기관리 등도 중요한 분야이다. 선교사의 초기 언어습득은 매우 중요한 책무이다. 선교기도정보제공 및 선교보고 등도 선교사의 책무 분야에 속한다고 본다. 선교사 자녀에 대한 안전과 교육환경에 대한 배려 등이 주어져야 한다.
고신 총회 산하의 교회와 세계선교위원회 그리고 여러 나라로 흩어져 있는 선교사들이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세계선교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오늘까지 많은 수고와 헌신을 아끼지 않았기에 감사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공적인 책무 규정과 관리체계를 좀 더 정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선지동산 59호 게재 / 선교책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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