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글] 선교와 책무 - 이신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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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와 책무
선교 책무에 대한 논의가 2005년 제2회 방콕선교포럼에서 있었고, 2011년에는 미국 뉴 헤이븐 OMSC에서 열린 Korean Global Mission Leadership Forum에서도 선교책무를 주제로 다루었다. 한국교회가 선교사를 보내고 후원하는 것을 위주로 하여 열심히 달려와 이제 20,000명이 넘는 선교사들을 파송한 선교대국이라고 자처하고 있으나, 과연 그 선교를 어떻게 해 왔는지를 반성하고 바로 잡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위기의식을 가지게 되어 선교책무를 논의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책무의 관점으로 풀어보는 선교
선교용어로서 책무라는 단어는 그렇게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accountability 라는 단어를 ‘책무’라고 번역한 것인데, 회계학, 경영학 분야의 전공용어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여러 분야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단어이다. 이와 관련된 의미의 용어로는 투명성(transparency), 청렴 (integrity) 등이 있다. 하지만, 책무라는 개념을 어디에서 빌려와서 선교적으로 적용하기 전에, 성경에 배여 있는 신학적 개념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창조하시고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인생은 누구나 자기가 행한 모든 행위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책무적 존재이다. 전도서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11:9).” 모든 인생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것으로 어떻게 살았는지를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결산을 할 때가 반드시 있음을 보여주는 달란트 비유(마25:14-30)도 책무 개념의 기본이 되는 말씀이다.
정민영은 달란트 비유에 근거하여 청지기적 책무를 “하나님이 위탁하신 자원을 그분의 의도에 따라 최선을 다해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계산(account)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여기에서 중심어는 위탁-사용-계산이다. 즉 책무의 성립의 조건은 신뢰에 바탕을 둔 위임과, 위임받은 것에 대한 충성스러운 이행과, 위임한 주인에게 과정과 결과에 대한 회계보고가 있어야 한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책무는 무거운 짐이나 구원의 조건이 아니고,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님의 주시는 힘으로 그를 섬기며 살아가는 복된 삶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목회도 책무이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to give an account)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히13:17).” 라고 하였다. 사도의 직분도 책무이다. 바울은 자신을 사도로 삼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나를 충성되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셨다 (딤전1:12).”라고 하였고,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고전4:2)”이라고 함으로써 자신의 사도의 직분을 책무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뢰와 위임이 있는 직분에 충성해야 할 책무가 따른다.
한국교회는 선교를 지금까지 파송과 후원 중심으로 펼쳐 왔으나, 이제부터는 파송과 후원에 따르는 책무의 개념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왜냐 하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 예수님께서 복음을 땅끝까지 모든 족속들에게 전파하고 제자를 삼으라는 세계선교의 사명을 제자들에게 위임하시고, 이 일이 이루어질 때, 세상 끝날에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신 것을 생각하면 선교 전체를 파송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책무의 개념을 보아야 더 온전함을 알게 된다.
선교책무공동체로서의 교회
선교의 주인이시며 선교책무의 위임자 하나님이시며, 선교책무의 수임자는 보내심을 받은 제자들이다. 그런데 선교책무의 수임자가 위임자이신 하나님 앞에만 책임이 있다고 한다면 같은 수임자로서 서로의 선교책무의식을 격려하고 강조는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결산하시기까지는 책무를 따져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교책무는 다른 책무도 그러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뿐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성립된다. 왜냐 하면 개인의 책무는 개인으로 끝나지 않고, 개인과 관계된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가 선교책무를 공유하고 협력하여 이행하고 서로 결산하고 평가하는 책무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선교를 책무의 개념으로 통합하려면 선교책무의 체계가 제도적 장치로 구축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선교책무공동체로서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것은 선교단체나 교회이다. 선교역사적으로 선교적 책무체계를 구축했던 공동체는 수도원이나 선교단체라고 말하지만, 필자는 교회가 선교책무공동체임을 주장한다. 교회가 그 책무를 바로 감당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수도원과 선교단체가 선교책무의 전임기관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으나, 성경에서 주님의 선교 대위임령을 수임하고 계승한 공동체는 교회임이 분명하다. 모든 민족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여 믿는 자들에게 세례를 주고 제자로 삼아 주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을 제자 한 두 사람에게 맡기신 것이 아니고, 몇 명의 제자들에게 맡기신 것이 아니라, 주를 따르는 모든 제자들의 공동체인 교회에게 맡기신 것이다. 직분자를 먼저 세우심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여 그들로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려고 하심이었다.(엡4:12) 선교단체의 선교책무의 체계는 선교사 중심으로 엮어져 있다. 거기에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하는 부수적 관련기관으로 쳐져 있다. 아래의 도표1과 도표2를 참고하라.
그리스도께서 사도와 복음전하는 자를 보내고 목사(교사)를 세워서 이루고자 하신 것이나, 선교단체를 통하여 현지에 뿌리내리고자 한 것이 교회를 세우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교회를 세우는 것은 선교책무의 궁극적 목적은 아니다.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엡1:23)”이라고 하였다. 교회를 세우고자 하심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스도의 뜻을 실행할 주체가 되기 때문이며, 교회가 장성하게 되면 될수록, 선교다운 선교가 교회를 통하여 온 세상을 향하여 전방위로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미전도종족을 가늠하는 기준이 자급, 자치, 자전하는 교회가 그 종족 가운데 있느냐 하는 것임을 교회가 선교책무의 주체적 공동체임은 더욱 분명해진다. 선교책무의 체계는 장성한 교회를 배제하고 몇몇 선교사가 개별적으로 주장하든지, 선교단체가 주도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선교사나 선교단체는 선교책무를 주도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교회가 세워지기까지 당분간 선교책무를 주도하겠지만, 교회가 세워지면 선교책무의 체계를 교회중심으로 구축하게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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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동산 62호 게재 / 선교책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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