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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고글] \"아빠(Abba)\" 아버지 - 길성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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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051회 작성일 09-11-2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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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Abba)\" 아버지


\"아빠 아버지\"라는 특별한 표현이 신약성경에 세 차례 나옵니다. 한번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기록한 본문에 나오고(막 14:36), 다른 한번은 로마 교회 성도들이 \"양자의 영\"을 받았음을 말하는 본문에(롬 8:15), 마지막 한번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의 영\"을 보내셨음을 말하는 본문에 나옵니다(갈 4:6). 세 본문을 개역개정 성경에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막 14:36)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

위의 본문들과 이전에 사용하던 개역성경의 본문들을 비교하면 \"아바 아버지\"를 \"아빠 아버지\"라고 수정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빠(abba)\"라는 말은 1세기 팔레스틴의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아람어 단어입니다. 개역개정에서 이 단어를 \"아바\"가 아니라 \"아빠\"라고 표기한 것은 아람어 단어의 발음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이 단어의 두 번째 자음에 경강점(dagesh forte)이 찍혀있으므로 강하게 발음해야 합니다. 영어성경에서도 경강점을 살려 \"abba\"로 음역하였습니다. 개역개정에서 아람어 단어의 발음을 살려 \"아빠\"라고 수정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아빠\"(abba)라는 단어의 의미와 용례를 둘러싸고 성경학자들은 격렬하게 논쟁하였습니다. 최초로 이 단어의 중요성에 주목한 학자는 독일 괴팅겐 대학교의 신약학자 요아킴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였습니다. 그는 예수님 당시에 이 단어를 주로 어린아이가 자기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한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예컨대, 히브리어 성경을 아람어로 풀어 번역한 팔레스타인 탈굼(Palestinian Targums)의 창세기에 어린 이삭이 아브라함을 \"아빠\"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22:6, 10). 예레미아스는 \"아빠\"라는 아람어 단어가 유아들의 언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어린아이가 자기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아빠, 나한테 뭘 줄거야?\" 하는 식으로 친밀한 마음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용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후 영국의 학자 제임스 바(James Barr)가 \"아빠는 \'대디\'가 아니다\"(Abba Isn\'t \'Daddy\')라는 유명한 논문을 써서 예레미아스의 주장을 반박하였습니다. 장성한 자녀가 자기 아버지를 부를 때에도 \"아빠\"라는 말을 사용한 실례가 여러 문헌들에 나오기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마을에 사는 남자 노인을 친근하게 부를 때에나 제자가 자기 스승을 부를 때에도 이 단어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결국 요아킴 예레미아스는 장성한 아들도 자기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아빠\"(abba)가 유아들의 언어라는 초기의 주장을 철회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빠\"가 예수님 당시에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사회에서 어린아이가 자기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한 용어였다는 예레미아스의 주장 때문에 아직도 영미권의 많은 설교자들은 강단에서 이 단어가 영어 단어 \"대디\"(daddy)에 상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아스는 아람어 단어 \"아빠\"가 \"대디\"를 의미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아빠\"(abba)를 유아나 어린아이가 자기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한 전문적인 \"유아들의 언어\"였다는 주장은 더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님 당시에 이 단어를 주로 어린아이들이 자기 아버지를 친밀하게 부를 때 사용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만큼 \"아빠\"라는 단어는 친밀함을 나타내는 용어였던 것입니다.
이 단어의 용례와 관련해서 주목할 점은 예수님 당시 유대사회에서 아무도 이 단어를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부를 때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1세기 팔레스타인 유대교에서 개인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My Father)라고 부른 증거조차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아스에 따르면,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아람어 단어 \"아빠\"와 같은 친밀한 용어로 하나님을 부른다는 것은 도무지 생각할 수조차 없는 불경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주후 1세기뿐 아니라 그 이전에도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사회에서 개인이 기도할 때 \"아빠\"라는 말로 하나님을 부른 사례를 입증할 만한 자료가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셨을 뿐 아니라,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예레미아스는 이것에 주목하고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하나님을 \"아빠\"(Abba)라고 부르신 것은 완전히 새롭고도 독특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의 진수를 보여준다. 예수님은 마치 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말씀하신 것이다. 확신이 넘치는 확고한 마음으로, 동시에 존경과 순종의 마음으로 그렇게 하신 것이다(Joachim Jeremias, Prayers of Jesus, 62-63).

예레미아스가 주장한 대로,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아람어 단어 \"아빠\"를 사용하신 것은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의 매우 친밀하고 독특한 관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예레미아스, 「예수의 선포」, 62, 98-105).
그런데 일부 성경학자들은 \"아빠\"(abba)라는 아람어 단어가 등장하는 신약성경의 세 본문에서  이 단어가 아버지와 동의어라고 주장합니다(아빠=아버지). 세 본문에서 모두 이 단어가 아버지를 뜻하는 헬라어 명사 \"파테르\"(patēr)와 함께 나오기 때문입니다(Abba ho patēr). 그러나 아람어에는 일상적으로 아버지를 뜻하는 \"아브\"(ab)라는 단어가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과 사도 바울은 \"아브\"가 아니라 주로 어린아이가 자기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하던 \"아빠\"(abba)라는 말을 사용했을까요?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독생자로서 성부 하나님과 매우 친밀하고 깊은 관계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런 사실을 제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으로 인해 성령 안에서 예수님이 누리시던 그 친밀하고 깊은 관계를 하나님과 누리게 되었음을 알려주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용하신 아람어 단어 \"아빠\"를 그대로 사용했을 것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아빠 아버지\"(Abba ho patēr, 아빠 호 파테르)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신약 시대의 성도들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함축함과 동시에 더 나아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사이의 관계가 \"아빠\"라는 말로만 나타낼 수 있는 깊고 친밀한 것임을 알려줍니다. 따라서 신약성경 본문에 나오는 \"아빠\"(abba)라는 아람어 단어를 제한적 의미에서 조심스럽게 (우리말) \"아빠\"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아브\" 대신 \"아빠\"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의도를 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뜻하는 일상용어 \"아브\"보다 \"아빠\"라는 용어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누리는 친밀하고 깊은 관계를 더 잘 표현합니다.
신약시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로 인하여 신자 개개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개혁주의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버지란 이름은 이제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보통 이름이 되었다. . . . 야웨의 명칭을 \"큐리오스\"로 옮겨놓는 것은 모자람이 있다. 아버지란 이름이 이것을, 말하자면, 채워주었다. 이야말로 하나님의 최고의 계시다. 하나님은 단순히 창조주, 전능자, 신실한 분, 왕과 주이실 뿐 아니라 또한 그분 백성들의 아버지다(Herman Bavinck, 「개혁교의학」, 2권, 112. 강영안, 「신을 모르는 시대의 하나님」, 121-22에서 재인용).

물론 구약성경에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본문이 있습니다. 하지만 신자 개개인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나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은 그리스도(메시아) 예수 안에서 주어진 신약시대의 특권입니다. 구약성경의 시편 기자들 가운데 아무도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하거나 찬양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심지어 다윗도 기도할 때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넘어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까? 신약시대의 신자들은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하나님과 매우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누리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와 예배와 찬송과 성찬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두렵고 떨리는 경험이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경험입니다.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죄인들을 벌하시는 거룩한 분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스러운 자녀로 여기시고 친밀하게 대하시는 \"아빠, 아버지\"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그분 앞에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되기를 기뻐하신 하나님은, 또한 신자인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렇게 불러드릴 때 마냥 행복해 하십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양자의 영\"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양자의 영\"이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습니다(롬 8:15). \"그의 아들의 영,\" 곧 성령님을 받았기에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향하여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갈 4:6).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것처럼! 우리를 자녀 삼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크고 놀라운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그의 아들의 영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것입니다(끝).

선지동산 54 게재 / 성경본문바로읽기(21) / 길성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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