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글] 선교사의 책무와 현지선교부 - 이신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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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파송을 받은 선교사들의 사역적 책무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현지선교부의 역할의 실효성이 반드시 확보되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쓰고자 한다.
교회의 선교의 가장 간단한 구도는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를 위임받았기 때문에 선교사를 교회가 파송한다. 교회의 파송없이 스스로 선교하러 가는 사람을 선교사라고 부른다는 것은 자의적인 선교를 묵인하게 될 소지를 안고 있다. 선교사는 그를 선교사로 파송한 교회에 대하여 선교적 책무를 가진다. 파송교회도 그들이 파송한 선교사들을 돌볼 책임이 있다.
교회와 선교사의 서로에 대한 선교적 책무는 이처럼 분명한 것이지만, 선교사가 파송교회의 관할구역을 벗어나 타문화권 선교현장에서 사역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대한 책무를 충분히 수행하기가 결코 간단치 않다. 교회와 선교사의 중간에 서서 서로에게 대한 선교적 책무를 독려할 기관이 필요한데, 바로 선교단체이다. 선교단체는 교회와 선교사를 연결시켜 주는 교량적 역할을 한다.
교회가 선교단체를 통하지 않고 선교사를 단독으로 파송하거나, 선교사가 선교단체에 소속하지 않고 단독으로 선교사역을 할 때에 서로 간의 선교책무를 제대로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교회가 어찌 선교사의 사정을 다 헤아릴 수가 있겠으며, 선교사가 어찌 현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일일이 교회와 의논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교회와 선교사 사이에 신뢰할만한 선교단체가 있어야 교회나 선교사의 서로간의 책무를 신실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선교단체가 교회와 선교사를 연결시켜 주는 교량적 역할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구성된 선교단체는 교회가 선교사로 파송하지 않은 평신도들(간혹 목사들도 있지만)을 직접 선교사로 파송하기도 한다. 선교단체가 선교사를 직접 파송하고 관할할 때에 교회는 뒤로 밀려난다. 이런 선교단체들은 교회와 선교사를 연결해 주는 교량적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선교사를 주도하는 주체적 역할을 하게 되기 쉽다. 이럴 경우에 선교사들의 책무는 주로 그 선교단체와의 관계에 치중된다. 그 ‘선교사’는 교회와의 관계가 점점 소원해지기 쉽다. 이런 선교단체가 선교에 열심을 다하는 선교기관으로 부각되어도, 자기 ‘선교사’들을 교회로부터 격리시키는 부정적 경향을 띠기도 한다. 하지만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를 위탁받아 그 선교사들이 선교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겸손히 섬기는 선교단체들도 적지 않다. 이런 선교단체라면 교회가 지원하고 격려할 뿐 아니라, 도움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 글의 남은 부분에서는 교회의 임명과 위임에 의해서 성립된 교회선교단체를 중심으로 교회 및 선교사의 책무를 말하고자 한다. 대형교회가 아닌 일반적 규모의 지역교회가 선교단체를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장로교회와 같이 노회와 총회의 규모를 갖춘 교회(교단)이면 그 교회와 선교사 사이의 교량적 역할을 감당할 교회선교단체를 만드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는 개체교회가 해외선교를 직접 관장하지 않고, 총회 산하의 세계선교위원회에게 해외선교를 위탁하였기 때문에, 세계선교위원회는 고신총회가 신뢰하는 교회선교단체라고 할 수 있다. 고신의 개체교회와 선교사들의 중간에 서서 양자의 선교적 책무가 바로 시행되도록 조정하고 관할하는 총회의 선교위임기관이다. 지난 1956년 고신 총회의 창립에 즈음하여, 총회의 상임기구로 설치된 세계선교위원회가 이제 한국 장로교회의 하나의 대표적 교회선교단체로 성장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고신세계선교위원회는 산하에 선교본부를 두고 있으며, 본부를 통하여 선교사의 훈련, 선발, 파송, 후원금 관리 및 송금 등을 통하여 선교사들에 대한 교회의 책무를 대행한다. 본부는 본부장을 비롯해서 훈련원장, 본부 총무들과 간사와 직원들이 포진되어 있고, 점점 더 전문화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지금까지의 고신 세계선교위원회 본부의 발전이 선교행정분야에 어느 정도 한정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선교사들이 파송을 받은 목적에 따라 전략적으로 배치되어 협력하는 팀사역 분야의 발전은 미흡하였다는 것이다. 선교는 혼자서 단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선교사들이 서로 협력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하다. 왜냐하면 선교사들이 다양한 사역을 하더라도, 자립하는 개혁주의 교회를 현지에 확립함으로써 비로소 선교의 목표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선교단체는 본국에 있는 본부행정이 얼마나 체계가 잡혀 있느냐에 의해서만 평가되는 것이 아니고, 현지에 있는 선교사들이 얼마나 선교목표를 따라 협력하면서 선교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본국에서 멀리 떨어져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본국교회에 대한 선교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현지선교부가 강화되어야 한다. 현지선교부가 선교사들의 교제를 증진시키는 정도의 역할에 만족할 것이 아니고, 선교목표에 따라 선교전략을 결정하고 선교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사역공동체로 자리잡아야 한다. 현지선교부가 유명무실하다면 선교현장에서의 선교사들의 사역적 책무를 공정히 평가하기는 어렵다.
최근 고신 세계선교위원회는 현지선교부를 강화하기 위해서 기존의 현지선교부를 재편하여 지역선교부라는 이름으로 재조직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전에는 최소한 두 가정이 파송되어 있는 지역이면 현지선교부를 조직할 수 있었으나, 그 정도의 규모로는 현지선교부로서 정상적인 기능을 잘 할 수 없다고 보고, 적어도 다섯 가정 이상을 묶어서 새로운 지역선교부를 만들어가고 있다. 전에는 현지선교부가 21개였는데, 재편과정이 끝나면 지역선교부는 13개 정도로 줄어들고, 지역선교부의 관할지역은 전보다 더 광역화된다.
이런 개편은 지금까지의 왜소한 현지선교부 상황과 비교해 볼 때 발전적인 변화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지역선교부가 더 광역화됨으로써 해결해야 할 숙제도 생긴다.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는 소속 선교사들을 돌아보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선교사들의 사역의 시너지가 얼마나 실제적으로 일어나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지역선교부의 선교활동으로 설립되는 현지교회들을 하나의 노회나 총회로 묶기에도 곤란한 점이 있다는 점도 심중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현지 또는 지역선교부는 고신 소속 선교사들의 사역공동체이다. 고신의 지역선교부가 단독으로 개혁주의 정체성을 갖춘 지역교회들을 설립하여 그들로 구성된 하나의 노회나 총회를 세우려면 지역선교회를 한 나라로 한정하여 더 많은 고신 선교사들을 그 지역으로 파송해야 할 것이다. 어느 한 나라로 파송된 고신 선교사가 소수에 불과할 경우, 고신이 단독으로 개혁주의 교회의 노회나 총회를 세우기는 어렵다. 이럴 경우에는 그 소수의 선교사들은 주위의 다른 나라를 포함하는 광역화된 지역선교부에 속하되, 현지의 다른 선교단체와 연합하여 개혁주의 교회건설을 위한 별도의 현지선교단체를 구성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고려할만하다. 같은 신앙고백, 같은 교회정치제도를 가진 개혁주의 교회설립의 목적으로 서로 연합할 수 있는 선교단체가 있다면 어디에서든지 서로 협력하는 것이 단독으로 현지교회를 설립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선교사들은 각자 사역의 분야가 다양하다고 하더라도, 현지선교부를 통하여 개혁주의 교회설립의 목표를 이루는 데 기여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선교목표에의 기여는 선교사의 책무를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보기 때문이다.
선교사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네 가지 구조 속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는데, 곧 본국교회, 본국선교부, 현지선교부와 현지교회이다. 선교사라면 이런 구조를 외면하고 선교적 책무에 충실하기는 어렵다. 그 중에서도 선교사들이 사역적 책무를 건전하게 수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현지선교부의 역할이 정립되고, 실제적으로 가동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현지선교부의 역할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자 한다.
선지동산 60호 게재 / 선교책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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