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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고글] 가나의 혼인 잔치 - 길성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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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764회 작성일 08-04-23 14:02

본문


가나의 혼인 잔치

선지동산 37호 게재 / 성경본문 바로읽기(5) / 길성남 교수




        한국 교회 성도들은 가나의 혼인 잔치 본문을 매우 좋아합니다(요 2:1-11). 금주(禁酒)를 기독교적 경건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는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예수께서 포도주를 만드신 이적을 다루는 본문을 좋아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금주문제와 상관없이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 자체가 신기하고 놀라운 이적임에 틀림없습니다. 잔치의 흥을 돋우는 포도주가 떨어진 상황에서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서 위기를 반전시키신 것은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듭니다. 또한 본문에 등장하는 마리아의 믿음과 하인들의 순종은 이야기에 생동감을 더해줍니다. 그 결과 가나의 혼인잔치 사건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었고 많은 성도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본문은 성도들의 사랑을 받는 것에 비례하여 그릇되게 해석되고 적용되어왔습니다.  

        한국 교회의 설교자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 본문에서 대체로 세 가지 요소에 주목하고 그것을 강조합니다. 첫째는 하인들의 순종입니다. 순종은 한국 교회의 설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제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따라서 이 본문에서 하인들의 순종에 초점을 맞추어 설교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하인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돌 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채웁니다. 그것도 “아구까지” 가득 채웁니다(7절). 이 본문에서 예수님은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어라”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단지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시고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말씀하실 뿐입니다(8절). 그래서 어떤 설교자들은 하인들이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는 과정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하인들은 예수님의 명령이 불합리했지만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연회장에게 (맹)물을 가져갔다가 뭇매를 맞거나 봉변을 당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들의 손 안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놀라운 이적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이런 해석에 근거하여 설교자들은 하인들처럼 주님께 순종하라고 역설합니다. 성도들이 도무지 순종할 수 없는 상황과 조건 하에서도 온전히 순종하면 놀라운 이적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외칩니다.

        다음으로 설교자들과 성도들이 이 본문에서 주목하는 요소는 마리아의 행동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난감한 상황에서 마리아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예수께 문제를 가지고 나옵니다(3절). 예수님은 마리아의 요청에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십니다(4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하인들에게 당부합니다(5절). 마리아는 예수님이 능히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음을 믿고 문제를 맡긴 것입니다. 설교자들은 청중에게 마리아처럼 예수님이 능히 문제를 해결하신다는 것을 믿고 무슨 문제든지 예수께 맡기라고 권고합니다. 처음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시던 예수님도 끝까지 믿고 의지하는 마리아의 믿음을 보시고 문제를 멋지게 해결하셨으니, 우리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의지하면 인생의 문제를 해결 받을 것이라고 역설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본문에서 설교자들과 성도들이 주목하는 것은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능력입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는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라고 신랑을 칭찬합니다(9-10절). 예수께서 평범한 물을 최고의 포도주로 만드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에 근거하여 설교자들은 예수님을 허물 많고 보잘 것 없는 우리를 능히 존귀한 존재가 되게 하실 수 있는 분으로 제시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처럼 죄와 허물 가운데 사는 옛사람을 새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새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일학교 어린이들도 이런 찬송을 부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예수님, 예수님, 나에게도 말씀하셔서 새롭게 새롭게 변화시켜 주소서.”

        이러한 세 가지 요소는 모두 본문 안에 포함되어 있고 성도들에게 영적인 도전과 유익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인들이 순종한 것처럼 오늘날에도 우리는 주님께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문제를 가지고 나와 도움을 청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또한 우리를 변화시키는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우리 자신을 예수님의 손에 전적으로 맡겨야 합니다. 이러한 교훈들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에서 이상의 세 가지에 주목하고 그것을 적용하는 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으십니까?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물론 이런 식의 본문 이해와 적용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비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통해 나름대로 은혜를 받고 영적인 유익을 얻었는데, 사실은 그것이 본문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이거나 저자가 본문에서 가르치는 것과 다르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 본문은 이야기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본문의 가르침을 바로 이해하려면 먼저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누가 주인공인지, 또 전체 이야기가 어떤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이 본문에는 마리아, 예수님, 제자들, 하인들, 연회장, 신랑이 등장합니다. 이들 가운데 마리아와 하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본문의 주인공으로 볼 수 없습니다. 이 본문에서 예수님이 주인공이라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고, 전체 이야기가 예수님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이야기체 본문의 중심 줄거리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 본문에는 마리아가 예수께 도움을 청하는 내용도 있고, 하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중심 줄거리는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위기 상황을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으로써 반전시키셨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행동이나 하인들의 순종은 모두 예수님을 부각시키기 위한 구성 요소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본문을 기록한 저자의 목적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입니다. 저자의 기록 목적을 파악한다는 것은 곧 본문을 통해 저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본문을 통해 전달하려 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그는 독자들이 이 본문을 통해 무엇을 깨닫거나 배우기를 원했을까요? 마리아의 행동을 본받아 자신들의 문제를 예수께 믿고 맡기는 것일까요? 하인들의 순종을 본받아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께 순종하는 것일까요? 혹은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일까요?

        다행스럽게도 이 본문에는 이적을 행하신 예수님 자신의 목적과 이 사건을 기록한 사도 요한의 목적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 전체의 결론을 제시하는 마지막 11절입니다. 여기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his glory)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이 구절은 마리아의 행동이나 하인의 순종이 아니라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표적(sign)에 초점을 맞춥니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행하신 일차적인 목적은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있고, 궁극적인 목적은 제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믿게 하는데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예수님의 영광이란, 사도 요한이 1장 14절에서 밝힌 대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이 이적을 행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이 본문을 기록한 사도 요한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20장 30, 31절에서 요한은 복음서의 기록 목적을 이렇게 밝힙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사도 요한이 예수께서 가나에서 행하신 “처음 표적”을 기록한 목적은, 독자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알려주고 그들로 하여금 믿게 하는데 있습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이 본문이 마리아의 믿음이나 하인들의 순종에 관한 본문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예수님께 있음을 보여주는 것도 이 본문의 일차적인 관심사가 아님이 분명합니다. 이 본문은 전적으로 예수님 자신에 관한 본문입니다. 이 본문의 핵심 내용은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에서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으로써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혼인 잔치는 종말적 구원의 때를 상징하며, 포도주는 종말의 기쁨과 풍요를 상징합니다(예수께서 만드신 포도주의 양은 750ml들이 포도주 1,000병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이 처음 표적은 예수님이 종말에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실 하나님의 아들, 곧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참조. 사 25:6-8). 또한 예수님 안에서,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생명의 풍요와 기쁨이 넘치는 종말의 구원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줍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을 목격하고 이 사건이 지닌 의미를 이해했고, 따라서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예수님과 사도 요한이 마리아의 믿음이나 하인의 순종을 강조하지도 않고 그것을 가르치는 것도 아닌데 그것에 주목하고 그것을 강조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마리아와 하인들에게 주목하다가 본문의 주인공인 예수님을 잊어버리거나 무시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신앙과 경건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믿음과 순종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정작 우리의 믿음과 순종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예수님을 제대로 믿을 수도 없고 제대로 순종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한국 교회의 설교자들은 복음서 본문을 설교하면서 예수님 자신보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믿음과 경건, 그리고 순종을 더 많이 강조합니다. 성도들이 이미 예수님을 잘 알고 있어서 더 이상 예수님에 관해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일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고 있을까요? 설령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합니다(벧후 3:18; 엡 4:13; 골 2:2). 예수님을 깊이 알면 알수록 예수님을 그만큼 더 잘 믿을 수 있고 그만큼 더 온전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알려면 무엇보다도 복음서 본문을 저자의 기록 목적에 충실하게 읽고 복음서 본문에 제시된 예수님께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 설교자들이여, 부디 복음서 본문을 저자의 기록 목적에 충실하게 설교하고 예수님을 드러내십시오. 한국 교회 성도들이여, 부디 복음서 본문에서 예수님께 집중하고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믿으십시오. (다음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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