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글] 말씀목회 패러다임을 붙들어야 한다 - 김순성 교수
페이지 정보
본문
말씀목회 패러다임을 붙들어야 한다
- 목회자들이여, 목회의 본질에 충실하라 -
당신의 교회는 급변하는 시대조류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무엇이 오늘 당신의 목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가?
당신의 교회 성도들은 구경꾼인가, 참여자인가?
10년 전 강의실에서 한 제자가 던진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교수님, 오늘의 중고등부 사역은 타문화권 선교사역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처한 목회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한 의미있는 표현이라 생각된다. 포스트모던(postmodern)시대의 급격한 사회 문화적 변화의 조류가 홍수처럼 교회 안으로 밀려오면서 교회들마다 전통목회의 근간이 송두리째 위협받고 있다. 오늘의 교인들이 겉보기에는 과거와 꼭 같은 사람이지만 속은 완전히 딴 세계 사람이다. 사고방식, 관점, 가치관, 의사소통방식이 모던(modern)시대의 사람과 완전히 다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요한 특징은 기존의 전통과 질서, 권위에 대해 반발과 거부이다. 절대 진리를 거부하고 모든 것을 상대화시키고 해체하려 한다. 포스트모던 시대는 이성보다는 감성이 지배하고 듣는 문화에서 보는 문화로 전환되면서 미디어에 집착하는 시대다. 심각한 것, 심층적인 것을 거부하고 가볍고 피상적이고 물질적인 가치를 중시한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면서도 나를 이해하고 수용하고 받아주는 공동체를 추구하고 거기에 참여하여 소속감을 추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람들은 초월적인 세계를 동경하고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몸으로 그것을 체험하고 싶어 한다. 이처럼 변화된 목회 환경은 설교, 예배, 목회전반에 걸쳐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이전의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목회자들 사이에 통용되고 있는 “말씀만으로는 목회가 안 된다”는 말도 실은 기존의 전통 패러다임으로는 오늘날 목회가 먹혀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교회와 목회가 이 급변하는 시대조류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가? 해답은 간단하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본질을 붙잡는 것이다. 교회론의 대가 한스 큉(Hans Küng)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 교회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든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 표준이 되어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초대교회가 전했던 그 복음을 전할 때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광야에서도 언제나 지도자를 가졌던 것처럼 교회에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인도하는 빛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를 인도해 나간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이 해답이다. 너무도 뻔한 대답이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가 이 기본원리와 본질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시대조류에 휩쓸리고 목회가 위기에 처한 것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목회란 사람의 일이 아니다. 말씀으로 성령이 목회하는 것이다. 목회자의 최선의 임무는 자신의 목회현장에 말씀이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것이다. 그리할 때 말씀이 친히 성도들을 목회하고 교회를 인도한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작별할 때 한 말을 기억하는가? 사도행전에 기록된 교회부흥과 성장의 변치 않는 원리를 기억하고 있는가?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20:32).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6:7).
이 원리는 21세기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상황에도 변함없이 적용된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지금 연구년으로 미국 달라스에 와 있다. 이 지역은 미국에서도 교회가 가장 부흥하고 성장하는 지역인데 그 비결은 교회 안에 말씀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출석하는 교회 예배실 입구 벽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말씀이 흐르는 곳에 믿음이 자란다(The faith grows where the Word flows)\".
이곳 남부는 침례교회가 강한 지역인데 최근에는 교파를 초월하여 말씀을 강조하는 바이블 펠로십 교회들이 늘고 있다. 장로교회는 대부분 교세가 작은 편인데 그 중에서도 말씀이 역동적으로 살아있는 한 교회가 유일하게 부흥과 성장을 경험하고 있다. 결국 이 시대에도 해답은 말씀목회임을 앞서가는 미국교회 현장이 증언하고 있다. 말씀목회란 교회를 철저히 말씀 위에 세우는 목회요, 말씀으로 성령이 이루어가는 목회이다. 중요한 것은 말씀에 대한 교리적 강조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말씀이 성도들 삶 속에 역동적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구조가 소그룹이다. 그것이 셀이든 가정교회든 성경공부 그룹이든 어떤 형태이든 상관없이 성도들 상호간 인격적인 만남과 관계형성이 가능한 작은 소그룹 공동체는 성령이 역사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도 대부분의 성장하는 교회들은 수직적 선포로서의 설교만 아니라, 수평적 교제로서의 소그룹을 통해 말씀이 성도들의 인격과 삶에 흘러가는 구조로 말씀목회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고 나누어져야 하며 말씀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경직되고 화석화된 교리가 아니라, 성경과 오늘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말씀의 생명력이 전달되어야 한다. 머리에만 갇힌 죽은 말씀이 아니라, 가슴 속에 느껴지고 경험되는 살아있는 말씀이 나누어져야 한다. 이 일을 위해 교회 안에 말씀의 강을 흘려보내는 첫 번째 수문에 해당되는 자가 바로 목회자다. 여기서 말씀이 막히면 더 이상 교회에 말씀이 흐르지 못한다. 교인들 가슴에 말씀이 사라지면 내면에 가시가 돋치고 성령의 열매가 아닌 육체의 열매를 맺게 된다. 소그룹 공동체의 다이내믹스도 마찬가지다. 소그룹 자체 속에 역동성이 있지만 그 속에 복음과 말씀이 역동적으로 흐르게 하는 것은 목회자와 훈련된 인도자의 몫이다. 목회자의 귀에 먼저 말씀이 들려져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목회자에게 말씀이 열려야 온 교회에 말씀이 열린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씀목회의 역동성에 참여할 수 있을까?
1.무엇보다도 목회자가 사역의 주도권을 말씀과 성령께 양도해야 한다.
오늘날 목회현장이 당면한 가장 큰 위기는 목회자가 교회의 주인노릇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적으로 아무리 큰 교회라도 이런 교회는 참 교회가 아니다. 목회자가 말씀과 성령께 겸손히 무릎꿇지 않으면 말씀의 강이 당신의 교회에 결단코 흐를 수 없음을 기억하라.
2.말씀과 복음이 흐르는 설교와 성경공부 방법론을 찾고 개발하라.
당신의 설교 속에 반드시 복음이 담겨야 말씀의 강이 교회에 흐르게 된다. 이것을 위해 성경 속에서 복음의 진주를 캐내는 방법을 연구하라. 나아가 깊은 기도와 함께 이 시대 청중에 효과적으로 다가가는 설교방식과 성경공부 교재 및 방법론을 스스로 찾고 자기 것으로 개발하라. 자료는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자신의 취향과 교회 상황에 맞게 개발되어야 하고 시험단계를 거쳐 정착이 되기까지 적어도 3년 이상의 세월이 투자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3.교회내 모든 조직과 프로그램이 말씀목회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교회 내에 다양한 조직과 프로그램들이 온 교회에 말씀이 흘러가는 한 가지 목표를 지향하면서 일관성 있게 움직여져야 한다. 말씀묵상(QT)과 소그룹 말씀교제가 어떤 조직과 부서활동에 우선되어야 한다. 교회내 말씀의 흐름이 방해된다면 그 조직과 부서는 해체하라.
4.소그룹 말씀교제가 전교인이 참여하는 평생 과정이 되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매주 전교인이 같은 교재를 가지고 같은 본문으로 말씀과의 만남과 교제를 나누라. 그리할 때 교인들이 교회를 향한 말씀의 역동성을 공동체적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5.목회구조가 회의중심이 아니라 사역중심의 체질로 바뀌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 안에서 성도 상호간 사랑과 나눔, 섬김으로 인도한다. 자신의 은사를 따라 몸으로 교회와 사회를 섬기며 전도와 선교에 헌신하도록 이끈다. 그러므로 직분자들이 자기 생각과 뜻이 아니라, 말씀에 이끌려 의사를 결정하고 그 뜻에 겸손히 순종하고 몸으로 앞장서 교회를 섬기는 체질로 바뀌어야 한다.
선지동산 56 게재 / 목회리더십과영성(21) / 김순성 교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