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글] 토기장이 밭의 비유 - 한정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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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을 통한 신약해석하기
한정건 교수(구약학, 원장)
성경: 마 27:3-10 (토기장이 밭의 교훈)
마태복음 본문은 회개하지 아니한 가롯 유다와 대제사장의 이야기입니다. 유다가 성전에 가서 예수님을 팔고 받았던 은 30을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도로 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그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유다는 돈을 성소에 던져 넣고 나가서 목매에 죽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이것을 피 값이라 규정하고,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삼았고, 그곳을 피밭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곳은 예루살렘 남쪽 힌놈의 골짜기에 있습니다. 흰놈의 골짜기는 고대로부터 토기 굽는 장소였습니다.
마태는 이 사건을 두고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을 이룬 것이라고 주석을 답니다. 그런데 마태가 인용한 구약의 소스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은 삼십과 토기장이 밭을 사는 것은 스가랴서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태가 착각을 했을까요?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이 저자의 착각으로 잘 못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마태는 스가랴 구절도 지적함과 동시에 예레미야의 교훈도 적용시키고 싶어 하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먼저 스가랴의 내용이 어떠한지를 살펴봅시다. 스가랴 11장은 거짓 선지자(양떼들을 팔아 자기 배만 불림)와 대조적으로 참목자를 소개합니다. 그 목자는 은총과 연락(연합)이라는 두 막대기로 양을 잘 돌봅니다(11:7). 그러나 양떼들이 목자를 싫어하게 되고, 그러자 참 목자는 자기의 고가 즉 품삯을 쳐 달라고 요구 합니다(11:12). 사람들이 은 30을 고가(품삯)로 주었습니다. 노예 값에 해당하는 싼 값입니다. 백성이 이렇게 참 목자의 가치를 비하시키니 여호와께서는 그 돈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고 말합니다.
마태는 스가랴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① 유다와 대제사장이 얼마나 예수님을 가치없이 취급하였는지를 먼저 꼬집습니다. ② 그 돈을 부정한 것으로 규정하였고, 그것으로 부정한 밭을 사서, 앞으로도 계속 부정하게 사용하게 만들게 하였음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마태는 단지 스가랴의 의미만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마태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예레미야의 교훈입니다. 예레미야 18장과 19장이 이와 관련됩니다. 18장은 토기장이의 비유 입니다. 예레미야는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부수어서 다시 다른 그릇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마음에 들지 않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겠다는 실물 메시지입니다. 19장도 같은 맥락의 메시지이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장로들과 제사장들을 데리고 흰놈의 아들 골짜기로 가서 오지병을 깨뜨리라고 지시합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겠다는 메시지이다. 그 이유를 렘 19:4에 밝히는데, 흰놈의 골짜기가 두 가지 죄악으로 인하여 더러워졌기 때문입니다. 첫째, 그곳에서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며(대하 33:6 참조); 둘째, 그곳에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흰놈의 골짜기는 당시 사형집행 장소였습니다. 당시의 재판은 공정하지 못하였습니다. 부자와 권력자가 가난한 자를 착취하고 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웁니다. 사람들은 죄인으로 선고된 사람을 이 흰놈의 골짜기에 끌고 와서 돌로쳐 죽였습니다. 흰놈의 골짜기는 무죄한 자의 피가 많이 흘린 곳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바벨론 군대를 불러와서 예루살렘을 징계할 것을 말하였다.
피 값, 토기장이 밭, 묘지 등의 단어들은 마태복음과 예레미야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미지들입니다. 또한 중요한 메시지도 양쪽이 공유하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① 무죄한 피를 흘렸다는 점입니다. 마태는 예레미야 때처럼 당시에도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것을 강조하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이제 마지막 선지자인 예수님을 죽여 죄없는 자의 피를 흘리는 그 양을 채우라고 꾸짖었습니다(마 23:29-32). 마태는 마지막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그 피의 잔을 대제사장과 유다가 성전에서 만난 그 현장에서 찾습니다. 유다가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마 27:4).
② 토기장이의 밭이 피밭이라 불리며, 임자가 없는 시체를 던지는 묘지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양자가 같습니다(마 27:7-8). 이스라엘에서는 시체가 무덤에 묻히지 못하고 버려지는 것을 큰 수치로 생각합니다. 흰놈의 골짜기는 두가지 종류의 시체가 던져졌습니다. 첫째, 그곳에는 돌에 맞아 죽은 시체가 버려진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은 피밭이 되었습니다. 둘째, 앞으로 바벨론이라는 적군이 예루살렘을 칠 때에 적군이 사람들을 죽여 시체를 그 골짜기에 던질 것입니다(렘 19:6, 11).
③ 양쪽이 다 회개하지 않음을 부각시킵니다. 예레미야는 흰놈의 골짜기 현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듭 회개를 외쳤습니다(렘 18:7,8,11). 그러나 이스라엘은 회개치 않았다. 마태복음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회개치 않음을 지적합니다(마 23:37). 대제사장과 유다도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④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고 있다는 점에서도 양자가 같습니다. 마태와 예레미야가 모두 예루살렘의 멸망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군대에 의해 성의 사람들이 죽어 이곳에 장사될 것입니다. 마태복음도 역시 이 성이 멸망할 것을 부각시킵니다(마 23:37-38; 24:2). 바로 로마 군대에 의해 성은 그렇게 멸망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예루살렘이 크게 무너진 것이 두 번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인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였고, 그리고 주후 70년에 로마에 의해서 입니다. 두 경우 성과 성전이 파괴되고 사람들이 학살당하였습니다. 예레미야와 마태, 이 멸망을 앞두고 회개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목이 터져라 전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사람들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놓고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그 성에 이를 것이다. 흰놈의 골짜기는 시체로 채워질 것입니다.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죄와, 회개하지 않은 죄로 인한 결과입니다.
선지동산 51호 게재 / 구약을 통한 신약읽기(1)
한정건 교수(구약학, 원장)
성경: 마 27:3-10 (토기장이 밭의 교훈)
마태복음 본문은 회개하지 아니한 가롯 유다와 대제사장의 이야기입니다. 유다가 성전에 가서 예수님을 팔고 받았던 은 30을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도로 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그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유다는 돈을 성소에 던져 넣고 나가서 목매에 죽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이것을 피 값이라 규정하고,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삼았고, 그곳을 피밭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곳은 예루살렘 남쪽 힌놈의 골짜기에 있습니다. 흰놈의 골짜기는 고대로부터 토기 굽는 장소였습니다.
마태는 이 사건을 두고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을 이룬 것이라고 주석을 답니다. 그런데 마태가 인용한 구약의 소스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은 삼십과 토기장이 밭을 사는 것은 스가랴서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태가 착각을 했을까요?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이 저자의 착각으로 잘 못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마태는 스가랴 구절도 지적함과 동시에 예레미야의 교훈도 적용시키고 싶어 하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먼저 스가랴의 내용이 어떠한지를 살펴봅시다. 스가랴 11장은 거짓 선지자(양떼들을 팔아 자기 배만 불림)와 대조적으로 참목자를 소개합니다. 그 목자는 은총과 연락(연합)이라는 두 막대기로 양을 잘 돌봅니다(11:7). 그러나 양떼들이 목자를 싫어하게 되고, 그러자 참 목자는 자기의 고가 즉 품삯을 쳐 달라고 요구 합니다(11:12). 사람들이 은 30을 고가(품삯)로 주었습니다. 노예 값에 해당하는 싼 값입니다. 백성이 이렇게 참 목자의 가치를 비하시키니 여호와께서는 그 돈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고 말합니다.
마태는 스가랴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① 유다와 대제사장이 얼마나 예수님을 가치없이 취급하였는지를 먼저 꼬집습니다. ② 그 돈을 부정한 것으로 규정하였고, 그것으로 부정한 밭을 사서, 앞으로도 계속 부정하게 사용하게 만들게 하였음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마태는 단지 스가랴의 의미만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마태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예레미야의 교훈입니다. 예레미야 18장과 19장이 이와 관련됩니다. 18장은 토기장이의 비유 입니다. 예레미야는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부수어서 다시 다른 그릇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마음에 들지 않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겠다는 실물 메시지입니다. 19장도 같은 맥락의 메시지이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장로들과 제사장들을 데리고 흰놈의 아들 골짜기로 가서 오지병을 깨뜨리라고 지시합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겠다는 메시지이다. 그 이유를 렘 19:4에 밝히는데, 흰놈의 골짜기가 두 가지 죄악으로 인하여 더러워졌기 때문입니다. 첫째, 그곳에서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며(대하 33:6 참조); 둘째, 그곳에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흰놈의 골짜기는 당시 사형집행 장소였습니다. 당시의 재판은 공정하지 못하였습니다. 부자와 권력자가 가난한 자를 착취하고 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웁니다. 사람들은 죄인으로 선고된 사람을 이 흰놈의 골짜기에 끌고 와서 돌로쳐 죽였습니다. 흰놈의 골짜기는 무죄한 자의 피가 많이 흘린 곳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바벨론 군대를 불러와서 예루살렘을 징계할 것을 말하였다.
피 값, 토기장이 밭, 묘지 등의 단어들은 마태복음과 예레미야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미지들입니다. 또한 중요한 메시지도 양쪽이 공유하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① 무죄한 피를 흘렸다는 점입니다. 마태는 예레미야 때처럼 당시에도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것을 강조하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이제 마지막 선지자인 예수님을 죽여 죄없는 자의 피를 흘리는 그 양을 채우라고 꾸짖었습니다(마 23:29-32). 마태는 마지막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그 피의 잔을 대제사장과 유다가 성전에서 만난 그 현장에서 찾습니다. 유다가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마 27:4).
② 토기장이의 밭이 피밭이라 불리며, 임자가 없는 시체를 던지는 묘지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양자가 같습니다(마 27:7-8). 이스라엘에서는 시체가 무덤에 묻히지 못하고 버려지는 것을 큰 수치로 생각합니다. 흰놈의 골짜기는 두가지 종류의 시체가 던져졌습니다. 첫째, 그곳에는 돌에 맞아 죽은 시체가 버려진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은 피밭이 되었습니다. 둘째, 앞으로 바벨론이라는 적군이 예루살렘을 칠 때에 적군이 사람들을 죽여 시체를 그 골짜기에 던질 것입니다(렘 19:6, 11).
③ 양쪽이 다 회개하지 않음을 부각시킵니다. 예레미야는 흰놈의 골짜기 현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듭 회개를 외쳤습니다(렘 18:7,8,11). 그러나 이스라엘은 회개치 않았다. 마태복음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회개치 않음을 지적합니다(마 23:37). 대제사장과 유다도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④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고 있다는 점에서도 양자가 같습니다. 마태와 예레미야가 모두 예루살렘의 멸망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군대에 의해 성의 사람들이 죽어 이곳에 장사될 것입니다. 마태복음도 역시 이 성이 멸망할 것을 부각시킵니다(마 23:37-38; 24:2). 바로 로마 군대에 의해 성은 그렇게 멸망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예루살렘이 크게 무너진 것이 두 번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인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였고, 그리고 주후 70년에 로마에 의해서 입니다. 두 경우 성과 성전이 파괴되고 사람들이 학살당하였습니다. 예레미야와 마태, 이 멸망을 앞두고 회개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목이 터져라 전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사람들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놓고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그 성에 이를 것이다. 흰놈의 골짜기는 시체로 채워질 것입니다.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죄와, 회개하지 않은 죄로 인한 결과입니다.
선지동산 51호 게재 / 구약을 통한 신약읽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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