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글] 더욱 더 분명한 유형적 공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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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더 분명한 유형적 공교회
- 코로나19 사태와 우리 신앙고백의 교회론 -
김재윤 교수
우리 신앙고백은 무엇보다도 유형적 공교회를 강조
우리 신앙고백의 교회론은 25장부터 시작된다. 25장은 그 시작부터 공교회(catholic church)를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공교회됨(catholicity)은 교회의 네 속성들 중 하나로만 여겨진다. 니케아신경 (325년)에는 공교회라는 명칭이, 이어진 콘스탄티노플 신경(381년)에는 ‘하나의,’ ‘거룩한,’ ‘공교회적,’ ‘사도적’이라는 교회의 네 속성들이 등장한다. 이후 이 네 속성들은 교회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로 자리 잡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교회론은 무엇보다도 ‘공교회 됨’(catholicity)을 앞세우는 특징을 보여준다. 시작뿐 아니라 6조로 구성된 25장은 4조 까지 매 항목마다 계속해서 공교회(catholic church)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25장 2조에서 4조 까지가 말하는 유형적 혹은 보이는 공교회(visible catholic church)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교회론에서 가장 독특하고 두드러진 사상이다. ‘보이는’ 교회가 공교회이며(25장 2조), 이 공교회인 유형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직분의 사역, 말씀(가르침)과 성례를 주셔서 현세에서 세상 끝날까지 성도들을 모으고 보호하신다(3조).” 그리고 “지역교회는 공교회로서 순수하게 복음의 가르침을 행하고 교회치리를 집행하며 예배를 드리는 정도에 따라서 더 또는 덜 순수하다.”(4조) 순수한 복음 설교를 통해서 실현되는 가르침과 직분 그리고 성례는 공교회인 유형교회의 순수한 실현이다. 이런 우리 신앙고백에 충실하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공교회인 유형교회의 일원이 되도록 소망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는 삼위 하나님께서 직접 복 주시기 위해서 열어주신 시공간인 예배를 하나님 편에서 강하게 흔드시고 거의 닫으셨다는 점에서 우리를 겸비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다시 이 예배를 열어주시길 간구하면서 우리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교회를 다시 세워가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를 생각하는 시점에서 유형적 공교회를 강조하는 우리 신앙고백의 교회론은 우리에게 큰 유익을 준다고 하겠다.
공예배와 더 잘 보이는 공교회
이 보이는 공교회는 때로는 더 잘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덜 보이기도 한다. 개체 교회는 이 공교회의 일원으로서 더 또는 덜 순수하게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고 수용하고 규례(성례)를 집행하며 공예배를 드리는 정도에 따라 더 또는 덜 순수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장 5조)
유형적 공교회의 일원인 지역교회는 더 잘 보이기도 하고 덜 보이기도 하다. 우리 신앙고백은 공예배를 드리는 정도 그리고 공예배 안에서 순수하게 복음의 진리가 가르쳐지고 성례가 집행되는 정도에 의해서 이것이 정해진다고 설명한다. 공예배를 드리는 것이 좀 더 분명한 공교회로 드러나는 유일한 척도가 된다. 한마디로 공교회 됨은 공예배를 드리는 것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 땅에 있는 교회는 공예배를 통해서 더 분명하게 보이는 공교회로 계속해서 세워져 가는 여정 속에 있다. 그러나 사실은 삼위 하나님께서 공예배를 통해서 공교회를 세워 가신다. 때로 신약성경은 가르침, 성례가 있는 예배하는 모임 자체를 교회라고 부르기도 한다(행 11:26, 고전 11:18, 고전 14:19, 28, 35). 공예배를 드리고 있는 모임 자체가 사실상 (공)교회이다. 공교회는 공예배의 정도에 따라서 좀 더 잘 보인다는 우리 신앙고백도 이런 점에서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공예배로 모이는 것과 무관하게 공교회의 일원인 개체교회가 세워지고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몸으로 모여 드리는 공예배를 반드시 고수해야
공예배를 통해서 공교회를 세워가시는 우리 주님은 비록 몸으로는 하늘에 계시지만 자신의 ‘몸’인 교회를 구체적인 방편과 직분자를 통해서 세워 가신다. 우리 언약의 중보자는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요 1:14). 성육신하신 우리 주님은 공예배중에 몸을 가진 직분자를 사용하신다. 그 인격의 모든 면을 기꺼이 사용해서 하늘 교리를 설교하고 가르치게 하신다. 이 땅에 있는 구체적인 물질인 물, 떡, 포도주를 사용하셔서 자신과 그의 몸인 교회를 하나가 되게 하신다. 또한 우리는 공예배 중에 이루어지는 성도간의 교제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성도의 교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온전히 실현된다. 따라서 우리 신앙고백이 설명하는 것처럼 성도의 교제는 일차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공예배에서 그리고 예배 속에서 이루어지는 신령한 영적인 것들로 서로를 권면하는 데서 가장 분명히 확인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6장 2조) 설교와 성례뿐 아니라 예배 중 성도들의 찬송, 고백, 기도와 송영은 말씀이 풍성하게 거하는 증거이며(골 1:16), 몸으로 함께 하는 성도의 실재적인 교제가 실현되는 현장이다. 추가적으로 우리는 스스로의 연약함도 볼 수 있어야 한다. 평생 동안 우리의 죄악된 본성을 더욱 더 알고 보아야 한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15문). 우리의 이런 상태를 생각한다면 모이는 공예배는 여전히 부족한 우리를 돕는 수단이 된다. 자신만의 인터넷 공간에 폐쇄된 성도는 스스로의 연약함을 도울 수단을 상실하게 된다. 예배의 시간에 발생할 수 있는 나태와 합당하지 않는 태도를 서로서로 살필 수 없는 상황에 스스로를 두게 된다. 예배에 몸으로 나가서 모이는 것은 삼위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복의 자리를 열망하는 신앙고백적 행동이며 우리의 방종을 억제하는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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