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글] 144,000은 누구인가? - 변종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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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난제해설⑧
144,000은 누구인가?
변종길 교수(신약학)
인 맞은 자 144,000
사도 요한은 ‘인(印) 맞은 자의 수’를 들었는데, 이스라엘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라고 한다(계7:4).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12,000씩 해서 모두 144,000이 된다(계7:5-8). 그러면 이 144,000은 누구인가?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문자적 의미로 본다. 그래서 문자적으로 144,000명이 차면 이 세상 역사가 끝난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여기에 보면, 우선 ‘단 지파’가 빠져 있다. 그리고 ‘에브라임 지파’ 대신에 ‘요셉 지파’라고 되어 있으며 ‘므낫세 지파’도 들어 있다. 기업(基業)을 나눌 때에는 ‘요셉 지파’가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로 나뉘어 두 분깃을 받는 것이 맞다. 그러면 ‘레위 지파’는 빠져야 하는데 여기에 들어 있고 대신에 ‘단 지파’가 빠졌다. 이것은 여기의 12지파와 144,000을 문자적으로 보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어떤 사람은 ‘단 지파’는 우상숭배를 많이 했기 때문에 탈락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단 지파’만 우상숭배를 한 것이 아니라 ‘에브라임 지파’도 많이 했다.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의 죄악을 말할 때에 대표적으로 ‘에브라임’의 죄를 많이 지적하였다(호4:17; 7:1,8; 8:11; 9:8-17; 11:1-4, 8-12; 12장; 13:1-3 등). 그리고 단 지파의 ‘일부분’이 갈릴리 북쪽 라이스로 이주한 것은 맞지만(삿17-18장), 전부 ‘다’ 이주한 것은 아니다. 소라와 에스다올 등지에 ‘일부’가 남아 있었다(수19:40-48; 21:5,23,24; cf. W. H. Gispen, “Dan,” Bijbelse Encyclopaedie, 1950, 114). 따라서 단 지파가 다 북쪽으로 이주한 것도 아니며 역사에서 사라진 것도 아니다.
상징적 의미
따라서 여기의 144,000은 상징적인 의미로 보아야 한다. 144,000은 12×12×1,000으로서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총수를 가리킨다. 12는 열두 지파와 열두 사도에서 알 수 있듯이 선택과 관련된 완전수이며(계21:12,14,17), 1,000은 10×10×10으로서 완전수인데 많은 수를 가리킨다(계20:2,4,6,7; 2:10).
그러나 이들을 단지 ‘유대인들 중에서 택함 받은 자들’만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계시록 14:3에서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십사만 사천’과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자들’은 문법적으로 동격(同格)이며, 이 둘은 동일한 집단을 가리킨다. 직역하면 ‘십사만 사천 곧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땅에서...’라고 했지 ‘유대에서...’라고 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은 ‘온 땅’에서 구원받은 자들이며, 단지 ‘유대인들 중’에서 구원받은 자들만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3-5절의 내용도 보편적이다.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따라서 144,000은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며 ‘유대인들’로만 제한하면 안 된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백성의 총수’(Beale) 또는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종들의 충만한 수’(Van de Kamp)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유대인들 중에서와 이방인들 중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총수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들은 계시록 7:9에 나오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와 다르지 않다. 하나님은 동일 집단에 대해 한 번은 이런 모습으로, 다른 한 번은 다른 모습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 이들이 동일 집단인 것은 계시록 14:1-5에 의해 분명히 밝혀졌다.
마지막 종말 때의 특별한 사람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144,000을 마지막 대환난의 시기에 나타날 어떤 사람들로 한정시킨다. 옛날 다미선교회의 이답게 목사는 이들을 ‘환난 시대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고 특별히 구원받은 유대인들의 첫 열매’로 본다(『요한계시록 강해』, 302). 신천지에서는 ‘영적 새 이스라엘의 제사장’이며 ‘알곡 신앙인’이라고 한다(『요한계시록의 실상』, 300). 또 다른 어떤 목사는 144,000을 ‘대환난기에 있을 추수의 종들인 두 증인의 무리’로 본다. 이러한 견해는 계시록 7:14의 ‘큰 환난’을 마지막 종말 때의 ‘대환난’으로 연결시켜 보는 데서 온 것으로 지나치게 미래적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주후 70년의 예루살렘 멸망 때에도 ‘큰 환난’이 있었으며(마24:21), 야곱 때에도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이 들어 ‘큰 환난’이 있었다고 한다(행7:11). 주후 90년대에도 소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핍박이 있었는데, 계시록 7:14의 ‘큰 환난’은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서 쓴 표현일 것이다(Beale).
아담의 타락 이후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삶 자체가 환난이다(창5:29; 47:9; 시90:10; 전1:1-2, 13 등). 특히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한다(요16:33; 딤후 3:12). 따라서 ‘큰 환난’이란 말이 나타난다고 해서 문자적으로 말세의 소위 ‘7년 대환난’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요한계시록은 문자적인 ‘7년 대환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144,000은 특별히 마지막 종말 때에 나타나는 어떤 사람들이 아니라,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 전체를 통하여 이 땅에서 구원받은 성도들 전체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이들은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사람들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구원받은 사람들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흰 옷 입은 자들
‘십사만 사천’ 곧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에 대해 성경은 또한 ‘흰 옷 입은 자들’이라고 말한다(계7:13). 이들은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다(14절). 문자적으로 이해한다면, 어린 양의 피에 옷을 씻으면 붉게 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그러나 성경은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고 말한다. 이것은 상징이기 때문에 그렇다. 곧,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 깨끗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피로 씻어 깨끗케 된 자들은 말세의 특별한 사명자들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구원 받은 모든 성도들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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