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글] 목회자는 거룩한 열정이 항상 불타올라야 한다 - 김순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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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는 거룩한 열정이 항상 불타올라야 한다
- 목회자들이여, 내면의 열정을 회복하라 -
목회자로서 당신의 삶에 가장 열정적인 순간이 언제인지 기억해 보라.
지금도 당신의 내면에 그 열정의 불꽃이 계속 타오르고 있는가?
모든 일을 그만두고 어디론가 도망하고 싶은 느낌이 들지는 않은가?
목회자라면 누구에게나 첫 사랑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목회자로 처음 소명을 받았을 때이다.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마치 거룩한 에너지에 감전된 듯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감격이 넘치고 복음 전하는 일을 생각만 해도 온 몸이 전율했다. 알 수 없는 ‘그 힘’에 이끌려 목회자로 응답했고 ‘그 거룩한 에너지’에 붙들려 기도하고 설교하고 복음을 전했던 것을 기억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목회자로 부름받은 사람에게 이런 일은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경험이다. 문제는 세월이 흐르면서 그 힘, 그 거룩한 에너지가 자신의 삶과 사역 속에 싸늘하게 식거나 사라짐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의 일에 몸을 던져 수고하면 할수록 기쁨과 즐거움은 줄어들고, 대신 피로감과 매너리즘만 깊어져 간다.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 계속되는 심방요청, 돌아서면 요구되는 설교, 참석을 강요하는 대내외 행사들, 교인의 죽음 소식 등등으로 이리저리 열심히 뛰다보면 어느새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쳐 피로, 권태, 무기력이 누적된다. 기도하는 일이 마지못해 하는 의무가 되고, 설교가 부담스런 직무로 변질되고, 사람을 대하는 일이 피곤한 업무가 되면서 목회자체가 무거운 짐이 된다. 이런 경험은 평범한 목회자만 겪는 것이 아니다. 소위 능력있고 위대한 사역자들도 꼭 같이 경험하는 일이다. 구세군의 창설자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도 계속되는 힘든 사역으로 기진맥진하여 한때 목회를 그만 둘 준비까지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사역 그자체가 아니다. 내면 깊은 곳에 열정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연료탱크가 비어있는 자동차처럼 에너지가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열정이란 인간의 내면에서 삶을 움직이는 힘이요, 에너지다. 특별히 목회자로 부름받은 자에게 이 열정은 단지 인간적인 열심을 뛰어넘는 힘이다. 위로부터 부어지는 성령의 은혜로 채워진 거룩한 능력이다. 그렇다면 처음 부름 받을 당시 뜨거웠던 그 열정이 왜 목회의 연수가 늘어가면서 점점 식어가거나 사라지는가? 주의 일을 게을리 하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열심히 혼신의 힘을 다해 뛰는데 말이다. 바로 이 점이 목회자가 깊이 유의해야할 대목이다. 목회자는 자신이 어떤 존재이며 목회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목회를 종종 마라톤 경주에 비유한다. 42.195km를 달려야 하는 마라톤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경기다. 마라토너에게 가장 큰 고비가 전체 코스의 2/3지점이라고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내면의 전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우러난다고 한다. 훌륭한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가 여기서 판가름이 난다고 한다. 훌륭한 선수는 피로가 정점에 달하는 이 지점을 미리 내다보며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적절히 안배하며 달린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고통스러운 그 지점을 통과한 후 소위 정신력이라고 일컫는 내면의 힘을 집중하여 마지막까지 페이스를 잃지 않고 결승점에 골인한다고 한다. 많은 목회자들이 자신의 목회여정에 본인의 열정을 위협하는 상황이 종종 찾아온다는 사실을 거의 의식하지 않은 채 마구 달린다. 그러다가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고갈되어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기진맥진한 채 주저앉는 불행한 경험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목회라는 마라톤 경주에서 경주자의 열정을 위협하는 상황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고든 맥도날드(Gorden MacDonald)는 열정을 위협하는 상황을 7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1. 고갈된 상태: 혼신의 힘을 다해 사역한 후 종종 찾아오는 공허한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대부분의 목회자는 월요일 아침에 이런 상태를 경험한다. 2. 말라버린 상태: 영적 에너지의 원천이 완전히 말라버린 위험한 상태를 일컫는다. 이 경우 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지고 많은 사람을 파멸로 이끌게 된다. 3. 뒤틀린 상태: 세상의 거짓 메시지들에 의해 비뚤어진 관점으로 선택과 결정을 하는 상태이다. 4. 황폐한 상태: 자신을 대적하는 세력들의 극심한 공격으로 인해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완전히 지쳐 있는 상태를 말한다. 5. 환멸을 느낀 상태: 자신의 꿈과 비전이 산산이 깨어져 상처 입은 마음의 상태이다. 6. 패배의 상태: 실패의 쓴 경험을 통해 무기력해진 상태를 말한다. 7. 낙담된 상태: 현실 속에서 자신의 신앙보다 더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는 사람이나, 사건 등을 통해 마음이 위축된 상태를 일컫는다. 이상의 다양한 상황들이 목회자의 삶과 사역 속에서 열정을 빼앗거나 약화시키고 내면의 피로를 증대시킨다. 뿐만 아니라, 목회자들의 열정을 파괴하는 가장 친근한 적이 있는데 동료나 상대를 향한 경쟁심, 비난, 자만심, 적의(敵意)라고 맥도날드는 지적한다. 종종 인간의 욕망에 근거한 야망을 열정으로 오해하는 일이 있는데 둘은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 야망은 내면 깊은 곳에 숨어서 거룩한 열정을 억누르고 그 자리를 쇼맨십과 인간적인 카리스마로 대치시키는 무서운 적이다. 이 야망은 얼마가지 않아서 탄로가 나고 만다.
그렇다면 거룩한 열정이 지속적으로 성장, 유지되고 회복되는 길은 무엇인가?
1. 정직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
당신의 내면은 전쟁터이다. 지금 자신의 내면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말씀의 빛 앞에 정직하게 성찰하라. 주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이 계속 불타고 있는가? 아니면 텅 빈 연료탱크처럼 고갈되어 있는가? 완전히 메마르고 황폐한 상태에 있지 않은가? 지치고 낙담한 상태에 처해 있지는 않은가? 그리하여 당신의 사역과 삶이 위기에 놓여 있지는 않은가? 혹시 야망에 이끌려 그것을 열정으로 착각하면서 광대처럼 종교적인 연기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반응하라.
2. 생활을 재정돈하라.
열정의 문제는 프로그램이나 진부한 방법, 얄팍한 기교로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목회사역 자체가 목회자의 열정이 사방으로 위협받는 구조이며 목회자는 예외없이 그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목회를 둘러싼 환경이나 조건은 목회자의 생활을 늘 흩트리려고 주기적으로 위협하며 하나님이 주신 소명자의 열정을 언제라도 파괴시키려고 끊임없이 공격해 온다. 목회자의 내면에 열정의 불꽃이 계속 타오르게 하기 위해서는 소명자가 마땅히 서 있어야 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을 위해 분주한 사역으로 흩어진 내면의 조각을 다시 모아 나를 부르신 그분 앞에 자신을 세우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요구된다. 자신의 내면의 조각을 모은다는 것은 생각과 마음과 몸의 흐트러진 에너지를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생활을 본래 자리로 재정돈하는 것이다. 목회자에게 이것은 거룩한 삶의 패턴으로 확립되어야 한다.
3. 시간을 투자하라.
분주한 사역환경에 함몰되지 않고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려면 그 일에 의도적으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하루, 한 주, 한 달 나아가 일 년 중 이를 위한 시간이 스케줄에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한다. 이 시간은 분주한 일상과 사역 현장에서 한 발 물러나 휴식과 내적 고요함을 확보하는 시간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열정이 위협받고 있다고 판단될 때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언제라도 과감히 현장을 박차고 물러나는 용기가 필요하다.
4. 비밀스런 장소를 확보하라.
당신의 영혼이 피곤하여 지칠 때 언제라도 달려가 쉼을 얻고 회복될 수 있는 다윗의 아둘람 동굴과 같은 비밀스런 장소가 있는가? 목회자라면 누구에게나 이런 장소가 확보되어야 한다. 이런 장소가 반드시 멀리에 있는 특정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매일 드리는 새벽강단이 그 자리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지성소인 내면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거기에는 우리 주님이 영으로 자리하고 계신다. 다윗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사울에게 쫓겨 억울하게 광야를 헤맬 때 주님의 강한 손과 그의 날개를 안전한 피난처로 삼고 거기서 영적인 갈증을 해갈하지 않았는가?
5. 영혼의 친구들과 교제하라.
지속적인 열정의 유지를 위해서는 ‘영혼의 친구’(soul friend)가 필수적이다. 언제라도 달려가 모든 것을 털어놓고 대화하고 교제할 수 있는 동료, 멘토가 있어야 한다. 위로뿐만 아니라, 내 영혼을 위해서라면 질책과 충고도 마다않는, 그리고 내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끌어안고 기도해 주는 그런 특별한 친구가 필요하다. 당신에게 이런 영혼의 친구가 있는가?
선지동산 49호 게재 / 목회리더십과영성(15) / 김순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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