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펀(Kampen) 신학교 방문기- 다섯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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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펀(Kampen) 신학교 방문기- 다섯째 날
작성자 : 남창완(M.Div 2학년)
다섯째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네덜란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크랜드(Schokland)를 방문하기로 예정된 날이다. 그런데 아침부터 예사롭지 않게 빗줄기가 내린다. 네덜란드의 겨울 날씨는 우리에게 쉽게 햇살을 비춰주지 않는다.
긴 아침 시간을 보낸 우리는 오전 11시 쇼크랜드(schokland)로 향했다. 쇼크랜드는 이전에는 섬이었는데, 20세기 초 대규모의 간척사업으로 현재는 육지가 된 곳이다. 네덜란드는 그 이름부터가 '낮은 지대의 땅'이란 뜻으로 국토의 대부분이 저지대인데, 그로인해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바닷물로부터 자신들의 터전을 보호해야만 하는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특별히 우리가 방문한 쇼크랜드는 바닷물로 부터 자신들의 터전을 굳건히 지켜낸 강인한 네덜란드인의 국민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라고 한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모든 문화유산 중 이곳 쇼크랜드가 유네스코에 첫 번째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쇼크랜드 박물관이었다. 박물관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20세기 초 대규모 간척사업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밀려오는 바닷물과 싸우며 척박하게 살았던 네덜란드인들의 삶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네덜란드의 간척은 만의 입구를 큰 제방을 쌓아서 막고 이후 바닷물을 모두 퍼올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데, 그점에서 물 빼는데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전문가라는 설명이 익살스럽게 들렸다.
박물관을 견학 한 우리는 간단한 점심 식사시간을 가진 후, 나이 많으신 가이드 선생님을 따라 쇼크랜드 이곳 저곳을 관광하는 시간을 가졌다. 비가 오는 날씨 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이드 선생님은 네덜란드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쇼크랜드 곳곳을 열정적으로 안내해주셨다. 비록 짧은 역사이지만,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지켜낸 것에 대한 그들의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쇼크랜드를 둘러보던 중 인상적이었던 점은 대규모 간척이 있기 전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설명이었다. 쇼크랜드는 남북으로 길쭉하게 생긴 섬으로 저지대의 특성상 땅으로는 왕래가 어려워서 폭이 좁은 널빤지로 만든 통로가 섬에 10km 정도 이어져 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통로의 폭이 워낙 좁다보니 양쪽에서 두 사람이 마주치기라도 하다면 서로를 껴앉고 마치 춤을 추듯이(이 광경을 쇼크랜드 댄스라고도 말한다) 서로 비켜가야 했다고 한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야 별 문제가 없겠지만, 젊은 남녀의 경우는 이 순간이 평생을 결정짓기도 했다. 특별히 쇼크랜드에는 북쪽에는 카톨릭 신자들이 남쪽에는 개신교 신자들이 주로 살았는데, 이 쇼크랜드 댄스가 의도치 않은 섬의 화합을 불러왔다고 한다.
쇼크랜드에서 돌아온 우리는 깜뻔에서 장을 보는 등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네덜란드 생활에서 인상적인 점은 검소하고 단촐한 네덜란드 사람들의 식생활 문화였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아침 점심으로는 빵에 햄과 치즈를 곁들여 주로 샌드위치로 먹었고 저녁에는 '스탐 팟'과 같은 요리를 해먹었는데,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단촐해 보이는 식사였다. 그리고 반찬을 곁들여 먹는 우리와는 달리 네덜란드 사람들의 식사는 대부분 원 푸드였고, 먹는 양도 우리에 비해선 상당히 적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일 아침 식사 준비를 위해 마트에서 장을 보는 우리에게 엘리나는 '한국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는다'며 가볍게 핀잔을 주기도 하였다.
저녁식사 시간에는 네덜란드에 유학온 한국인 유학생 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 구본승, 이충만 목사님과 김은규 강도사님 그리고 앞서 일정을 함께한 성유은 형제가 식사에 함께 하였는데, 특별히 아인트호벤 사랑의 교회에서 목회하시는 권준 목사님께 이 소식을 들으시고는 우리를 위해 중국요리를 대접해주셨다. 그동안 네덜란드 현지식으로 늘 먹다가 마늘과 간장 양념이 된 중국요리를 먹으니 마치 한식을 먹는 것 처럼 맛있게 느껴졌다. 식사를 하면서 유학생 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야기의 핵심은 계속해서 우리 고신 교회와 네덜란드 해방파 교회 간의 지속적인 교류가 이어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특별히 이번 방문처럼 학생들 간의 아래로 부터의 교류가 지속된다면, 미래 양 교단의 교류와 화합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단순하게 여겨졌던 신학교 간의 학생 교류 프로그램이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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